성경일독

성경일독시 각 장에 대한 내용을 설명함

창세기

창세기

창세기

창세기 1장 ~ 3장

📖읽기: 창세기 1장 ~ 3장

<1장 - 하나님의 창조>
🔹창세기의 인간 기록자는 모세입니다. 그리고 일차적 수신자는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빛이 생기고,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해와 달과 별이 생깁니다. 이때 당시, 말한 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는 왕을 의미했습니다. 모세는 지금껏 이집트의 파라오를 왕으로 알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과 물은 지금껏 이집트에서 신으로 여겨지던 대상이었습니다. '빛'은 이집트의 최고의 신으로, '나일강'은 생명의 근원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모세는 그것들조차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말함으로써,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강조합니다.

<2장 - 사람의 창조>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은 인간의 존귀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존귀하고 살아 있는 '혼'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한낱 '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에덴 동산을 가꾸며 지키는 사명을 주십니다(15절). 최초의 노동이 시행되는 장면입니다. 기쁨의 동산인 에덴에도 노동이 존재했던 것처럼,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사명입니다. 땀 흘려 성실하게 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3장 - 사람의 타락>
🔹사탄이 이브를 유혹하는 방식을 주목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브의 믿음과 생각을 흔들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16절에 기록된 그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을 자극했습니다(5-6절). 이것들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결국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아담과 이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죄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아담이 모든 인간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롬5:12).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을 약속하십니다(15절). 여자의 씨는 사람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심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4장 ~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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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가인과 아벨>
🔹4-6장은 죄의 치명적인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4장 전반부는 아담의 죄가 가인에게 유전된 것을, 4장 후반부는 가인의 폭력적인 죄성이 라멕에게 유전된 것을, 6장 전반부는 죄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헌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헌물은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가인이 복음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누가복음 11장 50-51절에 보면 아벨이 대언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때도 죄 없는 희생물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복음이 계시되었는데, 가인은 이런 복음이 담긴 경배를 거부하고 자기 방식의 경배를 고집했던 것입니다.

<5장 - 아담의 족보>
🔹아담의 족보에는 “죽으니라”는 말이 8번 반복됩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이제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족보와 대비되는 또 하나의 족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는 “낳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죽음과 관련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아담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6장 - 구원의 방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시며, 동시에 의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제시하셨습니다. 
🔹방주는 여러모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하는데, 14절에 언급된 ‘역청’의 히브리어 어근은 ‘속죄’의 어근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들어올지니라”고 명령하신 것에 주목하세요.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에 계셨고, 누구든지 방주를 통해 하나님 안에 들어온 자는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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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장 ~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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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방주의 선장>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인이 죄인과 함께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교회의 휴거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17절에서 “방주가 땅 위로 들리더라”는 묘사는 휴거의 모습과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방주의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문을 닫으신 것입니다(16절). 방주의 선장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선장이 되셔서 방주 안에 있는 생명들을 지키시며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방주를 끝까지 책임지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8장 - 대홍수>
🔹”하나님께서 바람을 땅 위로 지나가게 하시니”(1절)라는 표현에서 ‘바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으로 번역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라는 표현과 대구를 이룹니다. “땅 위에서 다산하고 번성하게 하라”(17절)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8절과 대구를 이룹니다. 그런 점에서 대홍수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대목입니다(20-22절). 하나님께서는 이 번제 헌물을 받으신 후, 다시는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희생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할 것을 의미합니다.

<9장 - 무지개 언약>
🔹하나님께서는 전 지구적인 홍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주십니다. 이 언약이 중요한 이유는 이 언약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수 있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언약이 없었다면, 인류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죄 때문에 또 다시 심판받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왜 함 대신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미 복을 주신 사람을 저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창9:1). 게다가 분명히 노아는 가나안이 함이 지은 죄와 비슷한 죄를 지은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가나안이 함과 함께 그 범죄에 가담했을지도 모릅니다(24절을 통해 성적인 범죄가 있었음을 알수 있음). 사실 성경과 역사를 보면 가나안의 후예인 가나안 족속이 아주 사악한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가 합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10장 ~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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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 니므롯>
🔹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이 온 세상에 흩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11장은 그렇게 흩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11장은 10장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사건이며, 10장은 11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특별히 강조되는 인물은 ‘니므롯’인데, 그는 강력한 사냥꾼으로서(창10:8-10, 대상1:10) 하나님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모험가들을 모아서 시날 땅을 정복하고 거기에서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네를 세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니느웨와 아시리아 왕국을 세웠다고도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앗수르(11절)가 그 일을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인물로 평가되며 바빌론 신비종교를 창설한 장본인으로 이해됩니다.

<11장 - 바벨>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창1:28)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고자 바벨을 건설합니다(4절).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벨을 심판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이유는(9절), 언어가 구별됨으로써 죄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면 죄가 쉽게 전파되겠지만, 언어를 경계로 민족과 국가가 나누어지면 죄가 확장되고 죄악된 것을 도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 밖에서 인간의 연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반역으로 이어집니다.

<12장 - 아브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과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땅과 민족은 국가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요소이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의 후손을 통해 한 국가를 세우려고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나라를 통해 메시아의 출현과 통치를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람이 파라오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정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파라오가 사래를 아내로 취하였다면, 메시아가 출현할 약속의 민족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막고자 하는 마귀의 영적 전쟁이 늘 있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13장 ~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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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 롯>
🔹롯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했다면, 아브람을 떠나 소돔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브람 곁에 머무르려 했을 것이고, 양과 소를 줄이는 희생도 감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소돔의 풍요를 하나님의 언약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말의 주저함 없이 소돔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번영을 꿈꾸며 아브람을 떠난 롯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14장 - 멜기세덱>
🔹아브람은 연합군에게 사로잡힌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게 되는데,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하며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습니다(18-20절).
🔹성경은 이 신비로운 인물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그의 계보, 출생, 죽음 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으며, 그는 선조나 후손 없이 하나님의 지명을 받고 홀로 서서 왕가의 제사장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영원토록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히브리서 7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이 멜기세덱은 아들 하나님의 현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5장 - 언약>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은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이니 두려워하지 말라(1절)”고 말씀하신 후, 하늘의 별들과 같이 아브람의 자손을 크게 번성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5절). 이에 아브람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런 믿음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는 ‘칭의’의 예표가 됩니다(롬4:22, 갈3: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해 친히 언약식을 이행하십니다. 당시 왕들은 반토막 낸 짐승 사이로 함께 지나가는 언약식을 시행하곤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반토막 난 짐승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함께 지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홀로 지나가십니다(17절). 이것은 아브람의 부족함 때문에 언약이 파기되는 경우는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언약을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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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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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 하갈과 이스마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창12:2).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자녀와 관련한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본처인 사래가 아니라 하갈을 첩으로 삼아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대에는 이런 경우가 흔했기에, 아브람은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달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을 아브람의 장자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이스마엘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아랍 민족들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운 것들은 늘 이렇게 무너지거나 부작용을 낳습니다.

<17장 - 아브라함과 사라>
🔹16장은 아브람의 나이를 언급하며 본문을 끝내고, 17장은 아브람의 나이를 언급하며 본문을 시작합니다. 무려 13년의 시간이 흐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손의 언약을 주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언약의 성취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아브람은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자신의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증하시고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과 함께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일의 통로와 도구가 된 사람은 영적 성장과 변화를 얻게 됩니다.

<18장 - 아브라함의 중보>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자손의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 그저 말씀만 하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눈에 보이는 아무런 증거가 없을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믿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23절)?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25절).”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환난 전 휴거의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창세기

창세기 19장 ~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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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 소돔과 고모라>
🔹본문은 소돔이 멸망당한 이유를 보여 줍니다. 소돔 사람들은 롯을 찾아온 천사들이 보통 남자들인 줄 알고 성적으로 희롱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소돔이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일상화된 도시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5절에서 “알리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롯을 찾아온 손님들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본문의 후반부는 어떤 과정을 통해 롯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근친상간으로 출생한 두 아들은 모압과 암몬의 시조가 되는데, 두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늘 눈앞의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롯의 삶은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 소돔이 주는 풍요로움을 쫓아간 롯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킨 아브라함은 자손의 언약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20장 - 아브라함의 거짓말>
🔹이전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창12:10-20).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그때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창12:3)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굳게 믿었다면,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만약 사라가 아비멜렉의 아내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이유입니다.

<21장 - 이스마엘의 추방>
🔹드디어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의 언약을 주신 지 무려 25년 만입니다. 당시 75세였던 아브라함은 벌써 100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히10:36). 그분의 정하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갈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 갈등의 원인을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도 바울이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때(갈4:29), 이스마엘의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삭은 언약의 성취로 출생했습니다. 그런 이삭을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22장 ~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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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면서 모리아 지방에 있는 한 산으로 가라고 지시하십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꼬박 3일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단순히 이삭을 바치기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렇게 먼 곳으로 가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일 동안 아브라함이 깊이 성찰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3일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련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말씀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그를 일으키실 줄로 생각하였으므로”(히11:19),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8절). 아브라함은 3일의 시간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친히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삭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각인시켰던 것입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2절). 이삭은 청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6절). 아버지 아브라함이 칼을 잡았을 때,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는 소리 지르거나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모습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삼았던 모습도 동일합니다(9절). 이삭은 번제에 쓸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삭은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진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지셨습니다. 모리아 산은 골고다 언덕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23장 - 사라의 죽음>
🔹23장은 연단의 과정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곳이 아니라 가나안 지경 안에 아내의 매장지를 마련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위해 지불한 은 사백 세겔은 지나치게 많은 금액입니다.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만으로 밭을 구입했습니다(렘32:9). 비록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고대 사회에는 물가 변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토착 민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아내의 매장지를 가나안 지경 안에 마련한 이유는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24장 - 이삭과 리브가>
🔹이삭의 신부를 찾는 이야기를 기록한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예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이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리브가는 교회의 모형이며, 엘리에셀은 성령님의 모형입니다. 엘리에셀을 통해 리브가가 이삭의 신부가 된 것처럼, 우리도 교회로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교회의 모형인 리브가가 얼마나 고귀한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막의 목마른 낙타가 보통 3분 안에 약 200리터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에게는 10마리의 낙타가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그네를 섬기기 위해 거의 2000리터의 물을 우물에서 퍼서 낙타들에게 나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성도로서 이러한 섬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창세기 25장 ~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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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 에서와 야곱>
🔹이삭과 리브가로부터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장자권입니다. 당시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두 배로 받고, 집안의 제사장이 되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권리는 당연히 형 에서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아직 리브가 배 속에 있을 때에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이삭 가문의 장자로 선택하셨으며, 야곱이 소유하고 누리게 될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사건을 근거로, 구원이란 인간의 행위나 조건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합니다.

<26장 - 이삭의 순종>
🔹이삭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옵니다. 당연히 이삭은 먹을 것이 풍부한 이집트로 이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고 가나안에 계속 머무르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상황과 환경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창12:1-3)을 바라볼 것을 촉구하십니다. 
🔹결국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결과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이방 왕으로부터 아내를 지킬 뿐만 아니라, 백 배나 되는 열매와 심히 많은 가축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먼저 상호 보호 조약을 맺자고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순종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7장 - 이삭이 야곱을 축복함>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배 속에 있을 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심으로써 동생을 이삭 가문의 장자이자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선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서를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 축복할 때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삭은 에서만을 불러 비밀스럽게 그를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삭의 가정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삭을 기만한 리브가와 야곱도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으로서 축복권을 가진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바를 더 추구한 것이 일차적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28장 ~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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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 야곱의 사닥다리 꿈>
🔹야곱은 에서의 위협 때문에 부모의 집을 떠납니다. 이때 이삭은 다시 한 번 야곱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축복에서는 “아브라함의 복”이 강조됩니다(4절). 비로소 이삭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정당한 계승자가 야곱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ㄱ의 마음은 두렵고 초조했을 것입니다. 고향에서 하란까지의 거리는 무려 900키로나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을 통해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사닥다리는 분리된 두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닥다리 환상과 함께 아브라함 언약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13-15절).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땅’과 ‘큰 민족’과 ‘복’을 야곱에게도 베푸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야곱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껏 야곱이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살았던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9장 - 라반이 야곱을 속임>
🔹야곱은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보다 더 영악한 삼촌 라반을 만나 속고 또 속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야곱에게 무의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마 라반의 모습 속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고, 속임수와 불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다음으시고 연단하시는 도구 중 하나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은 종종 인간관계의 문제로부터 발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나의 모난 부분이 더욱더 다음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30장 - 야곱이 라반과 약속을 맺음>
🔹레아와 라헬의 수태를 통해 고난 당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므로”(22절), 주께서 레아가 미움받는 것을 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나”(창29:31).
🔹야곱은 줄무늬 있는 가축과 점 있는 가축과 얼룩진 가축을 얻기 위해 껍질 벗긴 가지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당시 민간에 전승되던 미신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의 책략이 성공한 듯 보이지만, 둘 사이에 인관 관계가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소유가 번창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지키신 결과이지, 야곱이 사용한 미신적 책략이 효과를 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31장 ~ 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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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 야곱이 라반을 떠남>
🔹여전히 야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힘과 생각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몰래 라반을 떠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인간적인 꾀와 속임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야곱의 기대와 달리 라반은 단 7일 만에 야곱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해하지 말 것을 그에게 엄중히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24절). 역시 이번에도 야곱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32장 - 마하나임>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난 순간,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마하나임’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마하나임은 ‘두 개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자기 자신의 군대만 보아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또 하나의 군대가 자신과 함께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어떤 이유로 그분이 하나님이시거나 적어도 축복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비범한 자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26절). 그래서 야곱은 끈질기게 씨름을 하며 위골되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야곱은 사람과 씨름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형 에서와 씨름했고, 이후에는 라반과 씨름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씨름하며 끝까지 붙들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33장 - 야곱이 에서를 만남>
🔹지금껏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신의 꾀나 속임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에서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잔꾀를 썼지만, 결국 에서와의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맹신하며 인간의 한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토대 위에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야곱의 삶이 보여 주는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우리는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창세기 34장 ~ 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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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 - 디나 사건>
🔹야곱의 가정에 연거푸 끔찍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딸 디나는 살렘 지역의 통치자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은 여동생의 복수를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 때문에 야곱의 가정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공공의 적이 됩니다(30절). 
🔹그런데 야곱 또한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원래 야곱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에 정착했어야 합니다. 무사히 가나안으로 돌아오면, 벧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겠다고 서원했었기 때문입니다(창28:19-22). 하지만 야곱은 그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족의 가장으로서 벌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은 것도 화근이 된 것입니다.

<35장 - 야곱이 벧엘로 돌아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1절).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야곱은 자신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라고 지시하며 벧엘로 돌아갑니다. 세상에 속한 삶으로부터의 회개를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아브라함 언약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하십니다(11-12절). 본문은 하나님께서 또 다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을 기록하며 그의 열두 아들을 언급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열두 지파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36장 - 두 민족>
🔹야곱과 에서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민족이 네 태 속에 있도다. 두 종류의 백성이 네 배 속에서부터 갈라지되…”(창25:23).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야곱과 에서가 나누어진다는 것. 둘째, 야곱과 에서가 각각 큰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36장은 이 말씀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첫째, 야곱과 에서는 그들의 많은 소유 때문에 함께 거할 수 없었으므로, 갈라지게 됩니다(7-8절). 둘째,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것처럼, 에서는 에돔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창세기

창세기 37장 ~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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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 - 요셉>
🔹이제 요셉에게 초점을 맞춰집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차지하는 분량은 무려 열네 장이나 됩니다. 요셉의 삶에는 극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지만, 형들의 미움을 받아 하루아침에 종이 된 것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결국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는 많은 영적 교훈과 배움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형이 되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인물 중에 가장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또한 요셉은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셉을 선대한 보디발은 복을 받지만, 이스라엘을 억압한 파라오는 벌을 받습니다. ‘복’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3). 요셉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집트에 정착하고,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룹니다. 큰 민족과 관련한 연약의 성취입니다(창12:2). 큰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은 마침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정복합니다. 땅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1). 땅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1).

<38장 - 유다의 음란한 삶>
🔹유다의 음란한 삶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신 이유 중 하나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은 다른 지역과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음란한 곳이었기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계속 가나안에 머물 경우 그곳의 타락한 문화에 물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룰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입체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38장에는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수치스러운 근친상간을 통해 베레스가 태어나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에 베레스는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됩니다. 구원이 인간의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39장 - 요셉의 형통과 고난>
🔹요셉이 형통하는 대목에서 “주(LORD여호와)”라는 이름이 여러 차례 강조됩니다(2, 3, 5, 21, 23절). 요셉이 형통한 근거가 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보디발과 감옥의 간수는 요셉을 선대한 결과로 복을 받는데,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요셉의 삶은 배신과 모함과 좌절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기근을 피해 초목이 무성한 이집트의 고센 땅을 중심으로 장정만 60만에 이르는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요셉 때문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40장 ~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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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 - 두 직무 수행자의 꿈 해석>
🔹본문에는 왕이 먹는 음료와 음식을 관리하는 직무 수행자 두 사람이 나옵니다. 고대에는 왕이 독살당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이 두 지책은 왕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 정도 되는 지위입니다. 요셉이 이들을 통해 석방의 희망을 품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기대는 물거품이 됩니다. 잔 맡은 직무 수행자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저 비극적인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41장 - 파라오의 꿈 해석>
🔹아무도 파라오의 꿈을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임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에는 모두 때가 있고, 하나님의 때에는 모두 그분의 선한 목적이 있습니다(전3:1). 이로써 하나님께서 요셉을 연단하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고난을 통해 요셉의 신앙이 얼마나 연단되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파라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어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16, 25, 28, 32, 51, 52절). 그러자 이집트의 파라오조차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 생깁니다(38, 39절).

<42장 - 요셉과 형들의 재회>
🔹온 땅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구하려고 이집트를 방문합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를 찾았을 것이므로, 총리 요셉이 그의 형들을 만난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근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주목할 것은 요셉의 행동입니다. 왜 그는 시므온을 인질로 남겨 두었을까요? 이것은 형제들이 자신을 이집트에 팔았던 상황을 재연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버렸던 형제들이 또 다시 시므온을 버리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형들이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후회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요셉은 숨어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43장 ~ 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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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 - 요셉과 베냐민의 재회>
🔹시므온을 되찾기 위해서는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요셉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과 상실감 때문에 베냐민이 이집트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완고했던 야곱도 자신의 고집을 꺾게 됩니다. 이제 요셉의 모든 형제들이 이집트에 이르게 되고, 그들 모두가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됩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요셉에게 계시하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창37:6-7). 
🔹오랜만에 동생 베냐민을 만난 요셉은 그동안의 그리움이 복받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또 울음을 터뜨립니다. 요셉의 고난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며,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함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상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44장 - 베냐민의 누명>
🔹요셉은 의도적으로 동생 베냐민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형들이 베냐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형들은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써 깊은 슬픔을 나타냅니다.
🔹더 나아가 베냐민뿐만 아니라 자신들 모두가 노예로 남겠다고 자원합니다. 특히 유다는 베냐민을 풀어 주기만 한다면 자신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하며 아버지 야곱을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더 이상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때의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45장 - 요셉이 형들을 용서함>
🔹형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한 요셉은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종으로 팔린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으므로 과거의 사건과 관련해 유념치 말라고 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과의 갈등,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이 모든 고난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고 큰 그림을 위한 퍼즐 조각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셉은 “당신들을 위해 후손을 땅에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니”(7절)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아브라함 언약, 특히 ‘큰 민족과 관련한 연악’의 성취를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창세기 46장 ~ 4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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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 -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들어감>
🔹이제 야곱(이스라엘)의 모든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요셉이 주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아브라함 후손의 이집트 이주는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창1:13-16)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또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터이나 그들은 네 세대 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충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요셉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자 통로였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면(롬8:28)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도 그분의 원대한 계획을 이뤄가고 있는 귀한 조각들임을 믿어야 합니다.

<47장 - 야곱의 당부>
🔹야곱 가문이 이집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고센 땅이 강조됩니다. 고센 지역은 목축에 적합했는데, 이집트인들은 목축을 가증스럽게 여겼으므로 고센은 이집트인 거주지와 문화적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게 됩니다.
🔹후반부에 기록된 야곱의 당부는 언약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야곱은 이집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나안을 잊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매장지는  반드시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을 여전히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48장 - 야곱의 축복 >
🔹 야곱은 요셉을 낳아서 17년을 양육했고 요셉은 야곱이 죽기 전 17년을 부양하고 임종을 지켰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기만 추구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축복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파라오를 축복하고(창47:10)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고, 요셉과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워서 축복합니다.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는 말씀을 후대에도 전하게 된 것입니다(19절). 실제로 에브라임은 12지파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지파로 성장합니다. 출애굽 후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로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고, 그들이 차지한 땅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했습니다.

창세기

창세기 49장 ~ 50장

창세기 49장 ~ 50장

<창49장 - 야곱의 축복>
🔹이제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를 축복합니다. 야곱의 축복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의 축복은 예언적 성격을 가집니다. 야곱의 축복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유다입니다. 야곱이 10절에서 언급한 ‘실로’는 메시아를 뜻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때까지 유다의 정부가 끊이지 않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 왕이 유다의 후손이며,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르우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첩을 범했기 때문입니다(창35:22). 실제로 르우벤 지파에서는 단 한 명의 사사와 대언자도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도 비슷합니다. 야곱은 그들이 나뉘며 흩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레위 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모든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져 살게 되고, 시므온은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스불론은 항구에 거한다는 축복을 받는데, 실제로 스불론 지파는 지중해 근처에서 정착합니다. 아셀의 축복은 풍성한 수확인데, 실제로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의 평야 지대를 차지합니다. 

<창50장 - 야곱과 요셉의 죽음>
🔹야곱은 자신의 시신이 이집트가 아니라 가나안에 매장되기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똑같은 당부를 한 것으로 보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24절). 칠십 일의 애도 기간은 이집트 왕실에서 행해지던 관습입니다. 당시 요셉이 왕족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일로 인해 요셉을 두려워하고 있는 형들을 향한 요셉의 말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하시고 입체적으로 일하는 분이신지를 보여 줍니다.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을 선이 되도록 계획하시고 이루셔서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두게 하셨나니”(20절).

출애굽기

출애굽기

출애굽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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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장 - 파라오의 박해>
🔹야곱과 함께 이집트에 들어간 사람은 70명에 불과했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 장정만 60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큰 민족’과 관련한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창12:2).
🔹하지만 반대 세력의 핍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라오는 남자 아이를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가장 강력한 권력자였던 파라오의 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언약한 여인들에 의해 무산됩니다(17절).

출애굽기

출애굽기 2장 ~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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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모세>
🔹파라오는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강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출1:22). 그러자 아므람과 요게벳은 모세를 구하고자 그를 그 강으로 데려 갔습니다. 모세는 죽음의 강 위에 있었지만 궤 안에 있음으로 인해 안전했습니다. ‘궤(ark)’라는 단어는 방주, 언약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원한 멸망의 강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에게 발견됩니다. 공주는 강에서 건져낸 아이라는 뜻으로, ‘견져내다’라는 의미의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이제 모세(건져내다)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내는’(모세)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3장 - 스스로 계신 이>
🔹하나님께서 광야의 모세를 찾아오십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을 건져낼 하나님의 때가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건져내겠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11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12절). 모세는 “내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답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너는 내가 함께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왕자 모세는 하나님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목자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성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I AM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물으면 “I AM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14절)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I AM은 두 가지 의미의 문장입니다. AM을 완전 자동사로 보면, 그 자체로 완전한 문장이 되어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또한 AM을 불완전 자동사로 보면, 뒤에 보어를 필요로 하는 문장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보어를 주시지 않으셨으므로 그분께서 모세에게 하신 I AM이란 말에는 뒤에 무엇이나 다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다 되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4장 - 모세의 죽을 위기>
🔹24절은 언뜻 보면 의아합니다. 사명을 받아 이집트로 향하고 있는 모세를 왜 하나님께서는 이제 와서 죽이려고 하시는 걸까요? 십보라의 행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자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아 주십니다(26절). 지금껏 모세는 할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증거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언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언약은 ‘할례의 언약’입니다(창17:11-14). 하지만 모세는 자식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디안 땅에 살다 보니 언약에서 제외된 것처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받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사 언약대로 행하려고 하시는데, 모세가 그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행하지 않은 채 이집트로 가려고 하자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교훈을 보여 줍니다. 첫째, 모세는 출애굽의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없이도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둘째, 순종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5장 ~ 7장

📖읽기: 출애굽기 5장 ~ 7장

<5장 - 파라오의 강퍅함>
🔹드디어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파라오의 탄압이 더 극심해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기에 이릅니다. 
🔹때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큰 손해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더 큰 이익 때문이 아닙니다. ‘순종’ 그 자체가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6장 -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요히 인도해 내시지 않고 강한 능력의 손을 펼쳐서 모세로 하여금 주의 역사를 보게 하려 하십니다(1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때로 이런 강력한 시청각 교육을 통해 믿음을 세워 주십니다. 믿음은 삶의 체험을 통해 배워질 때 진정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3절)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전능자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여호와는 ‘사랑과 구원의 주’라는 의미로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칭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언약을 맺었을 뿐, 그 약속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히11: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약속을 받지 못했기에 그들의 머리 속에는 그 약속을 능히 이루실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세를 통해 그 약속을 이루심으로써 모세를 비롯한 후대들은 그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7장 - 심판들의 시작>
🔹이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이적들이 차례차례 소개됩니다. 소위 ‘열 가지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표적’ 또는 ‘이적’으로 불리고 있으며(출4:21, 7:3, 7:9, 8:23),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파라오의 왕관에는 뱀의 형상을 한 이집트의 수호신 ‘와디에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바뀌어 파라오의 뱀을 삼킨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전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7장의 나일강이 피로 변한 재앙의 의미는 8장의 아홉 가지 재앙과 더불어 설명하겠습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8장 ~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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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포함해 7-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파라오를 심판하시기 위해 행하신 10가지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전능자라는 사실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재앙의 이적들은 단순히 이집트를 징벌하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우상들을 벌하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출12:12). 아래 첨부한 표를 참고하시면서 본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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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 11장 ~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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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 마지막 재앙의 경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출3:7)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란 사실은 심판을 통해 입증됩니다. 이집트는 전무후무한 재앙을 경험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 사실은 마지막 재앙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실 것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개 한 마리도 자기 혀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7절).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평안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많은 이적들을 보이심으로 온 백성에게 자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9절). 

<12장 - 마지막 재앙과 유월절>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이루어지는 날 유월절이 제정됩니다. 유월절은 ‘넘어가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을 심판하시지 않고 넘어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유월절 사건의 핵심은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를 문기둥에 발라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린양이 대신 죽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어린양의 피 안에 있으면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요1:29),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시고(벧전1:19),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고전5:7)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들의 사면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13장 - 무교절 제정>
🔹이집트는 당대 최강대국입니다. 그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우상들과 치른 전쟁에서도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창15:13-14). 바로 이때 무교절이 제정됩니다.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을 수 없습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종종 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네 모든 지역에서 네게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죄는 단절되면 단절될수록 좋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무교의 명령을 주신 것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죄를 멀리하는 정결한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블레셋의 ‘가까운 길’이 아니라 홍해의 ‘광야 길’을 통해 인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7-18절). 그들이 전쟁을 보면 이집트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깝고 쉬운 길’이 아니라 ‘고난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다면, 분명히 그렇게 하실 만한 선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14장 ~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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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 홍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는데, 결과적으로 홍해와 광야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되고 맙니다. 이 점이 파라오를 자극합니다(3절). 파라오는 지금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 복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결국 이집트의 병거 부대는 바다에 수장되고, 주(LORD여호와)라는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됩니다(4, 8절).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에게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그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 구절을 또한 재림의 예표로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 때에 저 하늘에 있는 깊음의 바다(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에 사이에 있는 바다 - 계4:6)를 통과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공중으로 들림받을 것이며, 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깊음의 바다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15장 - 이스라엘의 노래>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노래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부른 이 노래는 홍해를 건넌 후 전능하시고, 무한광대하신 하나님의 신성과 두려움을 깨달은 후에 심중에서 입으로 흘러나온 노래입니다. “(시편33:1) 오 의로운 자들아, 너희는 주를 기뻐하라. 찬양은 곧바른 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로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후 약속의 땅으로 가는 처음 여정에서 마라의 쓴 물을 만나지만 하나님을 통해 그것이 순수한 물로 바뀌고, 종려나무 그늘도 얻게 됩니다. 험란한 이 세상에서의 믿음의 경주와 십자가를 지는 일은 늘 마라의 쓴 물처럼 보이지만, 인내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에게는 그분께서 반드시 좋은 결말을 주실 것입니다(약5:11).

<16장 - 만나>
🔹15장과 16장은 완전히 상반됩니다. 15장은 감사와 찬양의 장인 반면, 16장은 불평의 장입니다. 불평이 터져 나온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들을 때문입니다. 아마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함께 ‘고생 끝 행복 시작’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라의 ‘쓴 물’(출15:23), ‘배고픔’(3절), ‘목마름’(출17:1)과 같은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자, 한때 감사의 대상이었던 하나님은 불평의 대상이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로부터 빵을 비같이 내리리니”(4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늘은 초월적이며 신적인 곳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단지 육신의 배고픔만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생명을 위해 신뢰해야 할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6:51)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만나는 한 사람당 일 오멜씩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대략 2리터 정도 되는 양입니다. 특이하게도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18절) 않았습니다. 많이 거둔 자들이 적게 거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근거로, 넉넉한 자는 부족한 자와 나누어 균등함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고후8:15). 반면에 욕심을 부려 아침까지 남겨 둔 만나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서 못 먹게 되었습니다(20절).

출애굽기

출애굽기 17장 ~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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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 아멜렉과의 전쟁>
🔹모세는 마실 물이 없어 불평하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주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증명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간구의 대상이자 전적인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지, 불평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물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불평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평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이처럼 놀랍습니다.
🔹아멜렉과의 전젱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여기에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시편에는 손을 들고 부르짖는 성도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시28:2, 77:2, 134:2). 둘째, 들어올린 손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보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리하여 승리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상기시켰다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와 영적 전쟁에 있어서도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나으며, 세 겹 줄은 빨리 끊어지지 않습니다(전4:9-12). 

<18장 - 모세의 장인 이드로>
🔹모세를 찾아온 이드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조언을 듣고 중간 지도자를 세우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은 국가의 체계를 갖추어 갑니다. 또한 이것은 ‘분담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19장 - 시내산 언약>
🔹전반부의 핵심이 출애굽 사건이었다면, 후반부의 핵심은 언약식 체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이 아니라 정반대인 시내산으로 이끄십니다. 그곳에서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시내산 언약’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민족’입니다(5-6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제사장 왕국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 왕국이란 말은 온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고, 그분의 거룩한 명령과 말씀을 가르쳐 주는 국가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이방 민족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별된 지침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십계명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20장 ~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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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 십계명>
🔹십계명 중 처음 네 가지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섯 가지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의 두 가지 명령에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2:37-40).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으로 은혜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십계명의 모든 조항은 첫 사람 아담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양심에 새겨진 도덕 법규’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의 경우 신약 성도들이 유대인들과는 달리 토요일을 강제적인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지만 한 주에 하루를 거룩히 구분하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되새긴다는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21장 - 종과 폭행에 관한 법>
🔹21장부터 23장에 나오는 법은 십계명의 해설판과 같은 것으로서 일반 사회 생활의 기초가 되는 형법과 민법, 도덕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정 국가로 출범한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법을 제정하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회 규범은 이웃 사랑이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본문 역시 이웃 사랑에 기초한 법으로서 내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지켜질 수 있습니다.
🔹1-11절은 종에 관한 규정입니다. 율법이 종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노예제를 옹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종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면, 당시 종의 인권이 남용되고 박탈당할 가능성은 더 컸을 것입니다. 12-36절은 폭행과 보상에 관한 규정입니다. 율법이 폭행과 보상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생명의 소중함 때문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24절)라는 규정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이것은 복수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원칙입니다.

<22장 - 재물과 배상에 관한 법>
🔹배상에 관한 규정(1-15절)이 소개됩니다. 당시 보편적 기준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출21:24)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예를 들어 소 한 마리의 피해는 소 한 마리가 아니라 소 다섯 마리로 갚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도적적으로 더 탁월한 나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도덕적 탁월함의 기준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도덕적 기준이 ‘은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규범(21-27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약자인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나라가 되어야지, 그들을 이익의 대상으로 삼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담보로 잡은 옷이라도 약자를 위해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27절).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대로 우리도 남에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원칙을 적용하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23장 ~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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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 공의와 안식에 관한 법 등>
🔹공의에 대한 법, 안식에 대한 법에도 은혜와 긍휼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하세요. 원수를 은혜롭게 대하고(4-5절) 나그네를 배려하며(9절)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을 섬기는 자가 받게 될 복을 말씀하십니다(20-33절). 핵심은 풍요와 건강과 다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약속하시는 이유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풍요의 신, 건강의 신, 다산의 신이 각각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풍요의 신 바알, 다산의 신 아세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명백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24장 - 피의 언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들과 ‘피의 언약식’을 체결하십니다. 제단에 뿌려진 피는 하나님의 용서와 속죄를 상징하며, 백성들에게 뿌려진 피는 순종을 요구하는 멩세를 상징합니다. 절반은 피의 은혜를, 나머지 피는 거룩한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은혜는 결코 거룩한 삶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목적이 거룩한 삶과 선한 행실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딛2:14).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은 모두 피를 통해 확증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히9:22). 그래서 구약에서 흐른 모든 피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피에 대해 말씀을 주시고,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셨는데, 이는 피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며(레17:14),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합니다(레17:11).

<25장 - 성소>
🔹하나님께서 성소 건축을 명하십니다. 성소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장소’인데, 성막으로도 불립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소 건축을 명하시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8절에서 이렇게 설명됩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이처럼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집입니다. 
🔹이어서 성막 내부에 비치될 세 가지 기구를 말씀하십니다. 증언궤(10-22절)와 보여 주는 빵을 두는 상(23-30절)과 등잔대(31-40절)입니다. 증언궤는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기구로서 언약궤(신10:8) 또는 긍휼의 자리(출25:17)로도 불립니다. 언약궤로 불린 것은 그 안에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을 안치했기 때문이고, 긍휼의 자리로 불린 것은 용서와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그 위에 뿌렸기 때문입니다(레16:15).

출애굽기

출애굽기 26장 ~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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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 휘장>
🔹성막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집니다. 가나안으로 행군하는 중이기 때문에 전체 구조물은 운반 가능한 구조로 제작됩니다. 특이점은 성막을 둘로 나누는 휘장입니다(31절). 이 휘장을 기준으로 한쪽은 성소로, 또 한쪽은 지성소로 나눠지는데(33절), 성소에는 보여 주는 빵을 두는 상과 등잔대가 비치되고,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비치됩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가 휘장으로 막혀 있다는 것은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롬3:23).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던 죄의 장막을 허무셨음을 뜻합니다. 

<27장 - 거룩한 의복>
🔹대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의복이라고 명명됩니다(4절). 거룩한 의복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재료가 성막 재료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고,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대제사장이 거룩한 장소에서 봉사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발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대제사장들이 맨발로 섬겼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모세가 그의 신발을 벗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출3:5).
🔹에봇(6-14절)은 다른 예복 위에 입는 조끼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두 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습니다. 흉패(15-30절)는 가슴 위에 입는 정사각형 주머니인데 여기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보석이 달려 있습니다. 판결의 흉패라고 불리는 이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 두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석류인지 아니면 모양은 어떠한지, 어떻게 제작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림이란 '빛들'이란 말이고, 둠밈은 '완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을 통해서 뜻을 공개적으로 백성들 앞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도구였습니다. 즉 이것들은 대제사장의 흉패 안에 넣어져 보관되다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지을 때에 제비 뽑는 형식으로 뽑아 문제를 판결 짓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할 때 물으면 우림은 빛을 발하며 응답을 해 주었는데, 오늘날 만화 영화에서 마법의 구슬에게 무엇을 물으면 답을 주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28장 - 제사장을 위한 희생물>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룩히 구분하시기 위해 그들을 위해 죄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10-14절). 
🔹이것을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행동인데, 무엇인가를 위임하거나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소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며,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소를 죽였는데 이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속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예가 이것입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대속물이 대신 죽습니다. 그리고 대속물이 된 제물의 피는 뿌려졌습니다. 이는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하게 되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물은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예표합니다. 죄 헌물은 죄를 담당한 채 죽고, 피를 뿌리고, 마지막은 모조리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지옥에서 3일 동안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29장 ~ 31장

4월 12일 수요일
📖읽기: 출애굽기 29장 ~ 31장

<29장 - 제사장을 위한 희생물>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룩히 구분하시기 위해 그들을 위해 죄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10-14절). 
🔹이것을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행동인데, 무엇인가를 위임하거나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소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며,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소를 죽였는데 이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속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예가 이것입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대속물이 대신 죽습니다. 그리고 대속물이 된 제물의 피는 뿌려졌습니다. 이는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하게 되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물은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예표합니다. 죄 헌물은 죄를 담당한 채 죽고, 피를 뿌리고, 마지막은 모조리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지옥에서 3일 동안 계셨습니다.

<30장 - 분향 제단>
🔹성막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막의 성소 입구에 있는 놋 제단입니다. 놋 제단은 번제 헌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하나는 성소 안 지성소에 들어가는 휘장 바로 앞에 있는 금 제단인데 이는 향을 태우는 분향 제단입니다. 아론은 매일 이 분향 제단에서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했는데, 이것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계5:8). 
🔹그 다음 물두멍에 관한 지시가 내려집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는 것은 성막에서는 거룩함과 정결함을 유지한 상태로 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기 위해 그분께 나아가는 성도의 삶과 마음 자세가 거룩하고 정결해야 함을 배울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죄들을 자백하고 멀리하는 일 또한 중요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요일1:9).

<31장 - 성막 장인들>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을 제조할 일꾼들을 선별하십니다. 이름이 언급되는 두 사람은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말씀하시고, 거기에 합당한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은 세상의 지혜대로 하면 됩니다. 육신의 일은 육신의 힘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과나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표적이자(12-13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입니다(16절). 그러므로 율법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신약 성도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때 제정하신 안식일의 원리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적용해야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반드시 휴식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생리학적으로 우리의 세포는 7일마다 새롭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때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6일 동안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6일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고 하루는 쉬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사람에게는 첫 날이 됩니다. 우리는 먼저 쉼을 얻고 그 다음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첫 날에 예배를 통해 혼의 안식을 취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출애굽기 32장 ~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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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 우상 숭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산 아래 즉 광야에 있던 백성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십계명 중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나올 때 주신 금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심지어 아론은 그것을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를 위해”(1절)라는 그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간을 위해 일하는 가축의 형상으로 제작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에스겔서 1장 10절과 10장 14절을 비교해보면 사탄이 루시퍼였을 때 소의 얼굴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만든 최초의 우상이 금송아지였다는 것은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에스겔 10:14 그들이 각각 네 얼굴을 가졌는데 첫째 얼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며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고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33장 - 모세의 중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하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과 동행하십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만 함께하신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4장 - 십계명 개작>
🔹모세의 중보로 인해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작하라고 명하십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헌법이자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은 십계명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작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를 묵상해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6절)

출애굽기

출애굽기 35장 ~ 3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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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장 - 자원하는 마음의 헌물>
🔹성막을 제작하기에 앞서서, 안식일 규례가 다시 한 번 소개됩니다(1-2절). 이것은 성막을 제작한다는 거룩한 목표가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타락한 세상은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성도는 그러한 가치관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헌물을 드리는 장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모든 헌물이 자발적으로 드려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모든 자와 영으로 자원하게 된 모든 자”(21절)를 부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발성에 기초한 섬김과 헌신을 기뻐하시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동적인 섬김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헌신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36장 - 성막 제작>
🔹이제 본격적으로 성막을 제작합니다. 
🔹성막의 앙장은 네 종류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그룹을 수놓은 앙장이고, 그 위에 염소 털로 만든 앙장, 그 위에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앙장, 그리고 그 위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을 덮었습니다. 그룹을 수놓은 앙장은 성소 안의 천장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이것을 성경에서는 성막이라고 불렀고,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간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임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는데, 아마 검은색 염소 털로 만들었을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죄와 그 죗값인 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의 앙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한 대속을 예표합니다. 네 번째 앙장은 오소리 가죽인데 밖에서 볼 때 곧바로 보이는 앙장이 이것입니다. 성소 안에서 볼 때는 그룹이 수놓인 첫 번째 앙장이 보이고, 성막 밖에서 볼 때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이 맨 겉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보입니다. 오소리 가죽은 고급 가죽이 아닙니다. 매우 거칠고 투박한 가죽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가 매력 있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음을 나타냅니다(사53:2).

<37장 - 성소 안의 기구들 제작>
🔹십계명 돌판을 담을 언약궤(1-9절), 보여 주는 빵을 놓을 상(10-16절), 그리고 성소를 밝힐 등잔대(17-24절)와 분향 제단(25-29절)이 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성막에 임재하신 이유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지시와는 다른, 하지만 더 크고 화려한 성막이 제작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곳에 임재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은 성도의 삶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의 목표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 (세상적으로 볼 때) 실패할 수 있고, 반대로 불순종한 결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순종 자체가 참된 성공과 승리입니다. 그 결과가 세상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입니다(삼상15:22-23).

출애굽기

출애굽기 38장 ~ 40장

4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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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장 - 성막 밖의 기구들 제작>
🔹지금까지 성막 안에서 사용되는 기구들을 제작했다면, 이제부터는 성막 밖에서 사용될 기구들이 제작됩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것은 번제 헌물 제단과 물두멍인데, 이것들은 성막 출입구 정면에 위치합니다. 희생물을 바치는 번제단과 몸을 씻는 물두멍이 성막 입구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번제단과 물두멍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번제단과 물두멍보다 더 탁월하고 완전하게 우리 죄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출39-40장 - 성막 완성과 봉헌>
🔹39-40장은 출애굽기의 결론으로서, 모든 작업을 마친 후 성막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락에서 특히 강조되는 주제는 순종입니다. 39장에는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에 따라(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commanded Moses)”는 표현이 8번 등장하고, 40장에는 7번 등장합니다.
🔹성막을 지을 재료들이 모두 구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완성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도 모세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세우는 날짜와 과정까지도 세세하게 지시하십니다(40:2-8). 어떻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실행합니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순종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망각했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순종보다 성공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다 보니, 진리는 사라지고 변직과 꼼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작되었는지가 성막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기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근거는 성막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성막은 이교도 신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성막을 기쁘게 받으신 이유는 모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성공과 재물과 쾌락보다 더 큰 목표입니다.

레위기

레위기

레위기 1장 ~ 3장

<레1장 - 번제 헌물>
🔹레위기 1-5장에는 다섯 가지의 희생 제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희생 제사는 예수님의 사역의 예표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희생물의 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히10:1-14). 1장은 ‘불에 태우는 희생물(번제 헌물)’입니다. 번제 헌물은 소 떼나 양과 염소 떼에서 취했습니다(2절). 소는 종으로서 예수님의 충실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양은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드러냅니다. 비둘기는 예수님의 죄 없는 순결한 속성을 드러냅니다. 
🔹각각의 번제 헌물은 머리에 안수함으로써(4절) 죄를 전가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는(요1:29) 진리를 앞서 보여 준 것입니다. 

<레2장 - 음식 헌물>
🔹2장은 음식 헌물입니다. 피가 없는 유일한 제사이며, 다른 헌물과 함께 드려졌습니다. 음식 헌물은 그냥 곡식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드려야 했는데,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과정은 헌물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 즉 정성을 담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 헌물에는 절대 누룩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4절). 이것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고전5:6-8). 또한 음식 헌물에는 기름을 뿌리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 헌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만 했는데, 소금은 누룩과 반대로 부패를 방지하여 음식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과의 친교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13절). 

<3장 - 화평 헌물>
🔹화평 헌물은 서원을 성취하면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거나 개인의 헌신을 충족하기 위한 자원 헌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물로 드릴 수 있는 짐승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 화평 헌물을 드렸는데, 다만 희생물이 흠이 없어야만 했습니다.
🔹화평 헌물의 가슴과 오른쪽 어깨는 그것을 드린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을 드린 사람의 몫이 되었고 그는 자기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먹었습니다. 화평 헌물은 속죄를 의미하고, 따라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뜻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과의 원활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레위기 4장 ~ 6장

<4장 - 죄 헌물>
🔹1-3장에 소개된 세 가지 헌물은 모두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이었습니다. 4-5장에 나오는 두 가지 헌물은 향기로운 냄새와 상관이 없습니다. 4장은 죄 헌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가 되셨음을 의미합니다(고후5:21). 죄 헌물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가(그들이) 용서받으리라.”(20, 26, 31, 35절). 
🔹3-12절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13-21절은 회중이 범죄했을 때, 22-26절은 왕이나 통치자가 범죄했을 때, 27-35절은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입니다. 주목할 점은 “진영 밖에서”(12, 21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디서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히13:13)

<5장 - 범법 헌물>
🔹5장은 범법 헌물입니다. 범법 헌물은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죄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을 경우 드리는 희생 제사입니다. 
🔹범법 헌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신 것을 예표합니다. 범법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르는데, 그것을 위한 희생물로는 언제나 흠 없는 숫양을 바쳐야 했습니다(15절).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헌물을 자신의 몸으로 단 한 번 영원히 드리신 것입니다(히10:14). 

<6장 - 각 헌물의 구체적 지침>
🔹속건제(6:1-7)는 보상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피해자를 위한 보상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범법 헌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경우,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6-7장은 각각의 헌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소개됩니다. 희생 제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6:8-13은 번제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6:14-23은 음식 헌물에 관한 법인데, 아론과 그의 아들들,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16절). 이것은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 양식으로 삼는 것과 같습니다(요6:53). 6:24-30은 죄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죄 헌물은 매우 거룩한 것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레위기

레위기 7장 ~ 9장

<7장 - 각 헌물의 구체적 지침>
7:1-10은 범법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7:11-38은 화평 헌물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3번째 헌물이었던 화평 헌물이 마지막에 언급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가 바로 우리의 화평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8장 - 제사장이 거룩히 구별됨>
🔹8장은 제사장직을 거룩히 구분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면 그의 아들들은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 아론의 아들들이 될 필요가 있듯이,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거룩히 구분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사장들은 일단 씻음을 받아야 했습니다(6절). 성도들 또한 ‘다시 태어남의 씻음’(딛3:5)을 받았습니다. 둘째, 제사장은 제사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와 거룩함의 새 옷(새 사람)을 입은 자들입니다(엡4:24). 셋째,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고후1:21, 요일2:20). 

<9장 - 제사장 사역의 시작>
🔹9장은 제사장으로 임명 받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처음으로 시무를 하는 장면입니다. 22-24절을 주목해서 보세요.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고 죄 헌물과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 드리기를 마치고 내려 오니라.”(22절) 그리고 23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오자, 주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23절). 그 다음 24절에서 주의 불이 나오고,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엎드렸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지상 사역을 모두 드리시고 하늘에 가셨다가 다시 백성에게 오실 때, 백성들은 영광을 보며 그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으로 드려진 희생 제사(헌물)에 자신의 영광으로 회답하십니다(23절).

레위기

레위기 10장 ~ 12장

<10장 - 이상한 불>
🔹10장은 이상한 불을 드린 나답과 아비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절차와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저주의 대상임을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9-11절은 이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암시해 줍니다. 곧바로 모세가 포도주와 독주를 금한 것으로 보아(9절), 나답과 아비후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술은 제사장에게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이들에게는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16-20절은 율법의 형식보다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심판을 받아 죽게 되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어야 할 죄 헌물의 염소를 먹지 않고 태워 버렸습니다(15절). 모세는 율법의 형식에 어긋난다며 이를 크게 책망했습니다(17-18절). 그러자 아론은 이에 대해 변호하기를, “오늘 내가 죄 헌물을 먹었더라면 주께서 보시고 그것을 받으셨으리요?”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통회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했던 것입니다. 

<11장 -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1장은 음식에 대한 법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셨습니다. 이런 법이 정해진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과 종교적인 이유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구분하셨습니다(레20:26). 이런 율법을 시민법이라고 하는데, 신약시대가 열리고 폐지되었습니다(행10:9-28).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분별하며 사는 것은 도덕적인 영역에서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짐승을 부정하다 하신 것은 그 짐승이 악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정한 것으로 구별된 짐승 역시 창조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5)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시체가 샘물과 웅덩이는 부정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36절). 이것들은 정결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예수님께서는죽은 자나 병든 자를 만지셔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함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12장 - 출산한 여인과 아이에 관한 법>
🔹토끼와 돼지를 먹으면 왜 부정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를 낳으면 왜 부정해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룩하게 되는 일이 순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별을 지시하신 다음,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 이스라엘 역시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분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해가 되어야만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순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말씀에만 순종한다거나 순종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이 될 때만 순종하는 것은 참된 순종이 아닙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의학적으로 일생에 혈액응고 물질이 최고치에 달하는 순간은 태어난 지 8일째라고 합니다.

레위기

레위기 13장 ~ 15장

<13-14장 - 나병에 관한 법>
🔹13-14장은 거룩한 민족 가운데 있는 나병에 관련된 법입니다. 나병은 죄의 속성과 가장 비슷한 병입니다. 나병은 처음에 자각 증세가 없고, 몸 안에 깊이 잠복해 있다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게다가 나병은 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다른 신체 기관들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리면 격리하는데, 이것 역시 죄와 비슷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격리시키기 때문입니다. 나균은 옷과 집안의 사면 구석구석까지 침투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죄의 속성과 일치합니다. 
🔹13장이 부정한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에 관한 규례라면, 14장은 격리되었던 사람을 공동체로 돌아오게 하는 것에 관한 규례입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것과  반대로, 정결 의식에 사용된 새는 공동체 밖으로 날려 보내야 합니다. 이때 새는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죄를 상징하는 새를 날려 보낸 후에야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장 - 유출에 관한 법>
🔹15장은 유출에 관련된 법입니다. 유출은 생리와 더불어 몸에서 무엇인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1-18절은 남자의 유출에 관한 내용이며, 19-33절은 여성의 유출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출이 있는 자가 접한 것이라면 옷이든 그릇이든 사람이든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합니다(11-13절). 
🔹인간의 육신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몸에서는 더러운 것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은 씻음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육신은 언제나 불결한 것을 쏟아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말씀의 물로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의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대속 없이 거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위기

레위기 16장 ~ 18장

<16장 - 속죄일과 속죄 염소>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을 지켜야 합니다(34절). 속죄일이 제정된 이유는 아론의 두 아들이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가려다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2절). 이스라엘은 속죄일을 통해 과거의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속죄일 규례의 첫 번째 단계는 대제사장 아론이 자신의 정결함을 위해 수송아지와 숫양을 희생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 전체의 정결함을 위해 숫염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희생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숫염소 한 마리는 광야로 보내야 하는데, 이 염소를 ‘속죄 염소’ 혹은 ‘아사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염소’를 뜻하는 ‘에즈’와 ‘떠나가는’을 뜻하는 ‘아젤’의 합성어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을 전가 받은 후(21절) 이스라엘을 떠나는 염소인 것입니다. 이 속죄 염소는 우리의 모든 불법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사53:6).
🔹참고: 31절에 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금식을 말하는 것입니다(행27:9). 

<17장 - 피에 관한 법>
🔹7절은 마귀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것을 금하시는 경고입니다. 그래서 헌물은 반드시 성막에서 드려야 한다고 명하십니다(4절). 성막 외의 장소에서 헌물을 드리면,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에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11절은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고(레17:11), 하나님께서 피로써 우리의 혼을 속죄하시기 때문입니다(레17:11). 피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그래서 피를 경솔하게 대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18장 - 음행에 관한 법>
🔹18장은 주로 음행에 관한 규례입니다. 핵심은 이집트와 가나안의 음란한 성문화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몰렉 숭배에 관한 명령(21절)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우상 숭배가 육체적 간음을 조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는 우상의 신전 안에 합법적인 창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알 신전입니다. 바알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폭풍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당시는 농경 사회였으므로 기상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던 바알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바알 숭배는 여사제와의 집단 성관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히에로스 가모스’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자극받은 바알이 땅에 비를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레위기

레위기 19장 ~ 21장

<19장 - 행실에 관한 여러 가지 규례>
🔹19-22장은 행실에 관련된 법이 계속 이어지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을 금하는 구체적인 예가 나옵니다.
🔹5-8절은 화평 헌물의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화평 헌물은 반드시 이틀 안에 먹어야 합니다. 이 규칙은 화평 헌물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헌물로 드린 사람 혼자서 그 많은 양의 고기를 이틀 안에 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화평 헌물을 이틀 안에 다 먹기 위해서는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평 헌물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과도 화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일4:21). 9-10절 말씀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 밭의 모퉁이에 있는 곡식과 떨어진 이삭은 수확해선 안 될까요? 왜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선 안 되고,  떨어진 열매는 주워선 안 될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10절).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유 안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성도들의 중요한 덕입니다(고후8:14-15).

<20장 - 행실에 관한 여러 가지 규례>
🔹20장은 18장을 반복하면서 죄에 대한 처벌을 강조합니다. 반드시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범죄 가운데, 부모를 저주하는 행위가 포함된 점이 특이합니다(9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국가였고, 그 언약은 주로 가정을 통해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출12:26).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역시 죽음으로 다스려집니다. 그것이 단지 가나안의 풍습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성경적인 세계관과 완전히 대치되는 것으로서, 한 가지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경계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경계는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경계, 여자와 남자라는 경계, 사람과 짐승이라는 경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창조 세계의 질서입니다.

<21장 - 제사장의 행실에 관한 법 >
🔹21-22장은 제사장의 행실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제사장에게는 훨씬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구별된 것처럼, 제사장은 이스라엘 가운데 구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털을 깎거나 수염 양쪽을 깎아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가나안의 장례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상 숭배 행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사장은 가나안의 풍습 앞에서 더욱 엄격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결혼과 관련해서도 신중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창녀나 이혼한 여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과부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처녀하고만 결혼할 수 있을 뿐 아니라(13-14절), 부모의 시체를 만지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11절).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벧전2:5-9). 구약 시대에는 왕, 대언자, 제사장이라는 구별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자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제사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신약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 또한 자발적으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딤전3:1-13, 딛1:5-9). 직분의 구별은 사라졌지만, 리더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관한 규례 중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을 수 없다는 조항이 특이합니다(22:28). 이러한 규례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가나안의 풍습이었거나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레위기

레위기 22장 ~ 24장

<22장 - 제사장의 행실에 관한 법 >
🔹21-22장은 제사장의 행실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제사장에게는 훨씬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구별된 것처럼, 제사장은 이스라엘 가운데 구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털을 깎거나 수염 양쪽을 깎아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가나안의 장례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상 숭배 행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사장은 가나안의 풍습 앞에서 더욱 엄격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결혼과 관련해서도 신중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창녀나 이혼한 여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과부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처녀하고만 결혼할 수 있을 뿐 아니라(13-14절), 부모의 시체를 만지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11절).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벧전2:5-9). 구약 시대에는 왕, 대언자, 제사장이라는 구별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자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제사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신약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 또한 자발적으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딤전3:1-13, 딛1:5-9). 직분의 구별은 사라졌지만, 리더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관한 규례 중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을 수 없다는 조항이 특이합니다(22:28). 이러한 규례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가나안의 풍습이었거나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23장 - 이스라엘의 일곱 명절>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행실’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시간’을 말씀하십니다. 각 명절의 기간과 의미는 첨부한 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4장 - 제사장의 직무와 신성모독>
🔹24장은 제사장의 직무와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들을 다루는 법입니다. 정기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와 달리, 등잔불은 매일, 보여 주는 빵은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이 단락이 명절 규례 바로 뒤에 위치하는 것은 전 국민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가 중요한 것처럼 날마다 해야 하는 소소한 일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를 처벌하는 사건이 소개됩니다. 특이한 점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헌물을 드릴 때 짐승에게 안수하여 죄를 전가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부패를 넘어서서 이스라엘 전체를 부패시킨 행위입니다. 그래서 안수를 통해 공동체의 죄를 범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레위기

레위기 25장 ~ 27장

<25장 - 안식년과 희년>
🔹25장은 두 가지 중요한 해를 대룹니다. 안식년과 희년입니다. 안식년은 칠 년마다, 희년은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절기입니다. 이 두 절기에는 농사를 지어선 안 됩니다. 생명의 근원이 땅과 노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저절로 자라난 곡식과 과일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안식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희년의 ‘주빌리(jubilee)’라는 말은 ‘소리 나다’ 혹은 ‘흐르다’를 뜻하며 희년이 다가옴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가리켰습니다. 희년에는 아무도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않았으며 땅이 저절로 내는 것들로 채움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상속물을 되찾았고, 히브리 사람으로 종이 된 사람들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를 얻었으며, 7월 10일은 속죄일로서 산헤드린은 이때에 나팔을 불게 하였는데, 이때 종들은 곧바로 자유를 얻고 땅은 본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같은 법은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거나 많은 땅을 영원히 소유하거나 빚이 너무 늘어나거나 사람이 영원토록 종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긍휼의 법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 간에는 어느 정도 평등이 유지되었고 땅은 원래의 지파에 따라 영원히 구분되어 나뉘었으며 모든 사람의 계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배분해 주는 분이시며, 자기들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26장 - 복의 약속과 징계의 경고>
🔹26장은 약속의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의 조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국제 조약 같은 중요한 법적 문서들은 그것을 지켰을 때 받는 혜택과 어겼을 때 받는 저주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형식이 이곳 26장과 신명기 2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본문의 강조점은 순종하여 받는 복이 아니라 불순종하여 받는 징계에 있습니다. 우선 양적인 측면에서도 벌에 관한 부분이 세 배 가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쉽게 타락하는 마음을 잘 아셨기 때문이고, 또 타락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27장 - 서원과 십일조>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것을 무를 수 있을까요? 특별한 경우에 한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서원한 것을 무르기 위해서는 처음 드린 가격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강조점은 하나님께 경솔하게 서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있습니다. 서원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지는 않지만,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신23:21-23, 전5:2-7, 잠20:25).
🔹신정 정치 하에서 운영되던 율법의 십일조는 신약의 도래와 함께 분명히 사라졌지만 십일조의 정신과 원리 즉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들 수입의 일정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과 주의 일을 위해 헌금을 할 때 주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신약성경에 수입의 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성경 전체를 볼 때 수입의 십분의 일 이상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기에 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도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서 헌금을 드리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교회에서 이런 헌금을 율법의 십일조로, 강제 규정으로 세금을 걷듯 걷는 것은 신약시대의 헌금의 원리(고후9:6-7)와 배치되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민수기

민수기

민수기 1장 ~ 3장

<1장 - 인구 조사>
🔹본문의 인구 조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15:5). 민수기의 인구 조사는 이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입증합니다. 둘째,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있을 전쟁을 대비한 것입니다(3절). 싸움에 나갈 수 있는 군인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본 단계였습니다.
🔹레위 지파는 인구 조사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다른 중요한 역할이 맡겨져 있습니다. 성막과 언약궤를 책임지는 임무입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움에 달려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와 성막을 책임지는 일은 그 어떤 역할보다 중요했습니다.

<2장 - 진영 배치>
🔹2장은 이스라엘의 진영 형태를 보여 줍니다. 진영의 한가운데 성막이 위치하고, 열두 지파는 그 성막을 둘러싼 모습입니다. 이것은 이집트 군대의 진영과 동일합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신의 거대한 장막을 군대가 둘러서 진치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진영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열두 지파의 진영이 성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레위 지파 외에는 누구도 성막 가까이 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 절제되지 않은 친밀함을 나타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형태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거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체들이 다양하게 포진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십니다(고전12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 지파들이 있어야 할 곳을 자신의 뜻대로 배정해 주셨듯이, 오늘날 각 지체들이 교회 안에서 있어야 할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각자 부름 받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3장 - 레위 지파의 인구 조사>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의 열 번째 심판을 통해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죽게 하셨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들은 죽음을 면해 주시는 대신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3장에서 레위 지파의 인구 조사를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고, 레위 지파의 가축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모든 가축을 대신합니다(4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