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창세기 1장 ~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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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하나님의 창조>
🔹창세기의 인간 기록자는 모세입니다. 그리고 일차적 수신자는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빛이 생기고,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해와 달과 별이 생깁니다. 이때 당시, 말한 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는 왕을 의미했습니다. 모세는 지금껏 이집트의 파라오를 왕으로 알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과 물은 지금껏 이집트에서 신으로 여겨지던 대상이었습니다. '빛'은 이집트의 최고의 신으로, '나일강'은 생명의 근원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모세는 그것들조차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말함으로써,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강조합니다.

<2장 - 사람의 창조>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은 인간의 존귀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존귀하고 살아 있는 '혼'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한낱 '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에덴 동산을 가꾸며 지키는 사명을 주십니다(15절). 최초의 노동이 시행되는 장면입니다. 기쁨의 동산인 에덴에도 노동이 존재했던 것처럼,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사명입니다. 땀 흘려 성실하게 사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3장 - 사람의 타락>
🔹사탄이 이브를 유혹하는 방식을 주목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브의 믿음과 생각을 흔들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16절에 기록된 그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을 자극했습니다(5-6절). 이것들은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결국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아담과 이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죄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아담이 모든 인간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롬5:12).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을 약속하십니다(15절). 여자의 씨는 사람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심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 ~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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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가인과 아벨>
🔹4-6장은 죄의 치명적인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4장 전반부는 아담의 죄가 가인에게 유전된 것을, 4장 후반부는 가인의 폭력적인 죄성이 라멕에게 유전된 것을, 6장 전반부는 죄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헌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헌물은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가인이 복음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누가복음 11장 50-51절에 보면 아벨이 대언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때도 죄 없는 희생물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복음이 계시되었는데, 가인은 이런 복음이 담긴 경배를 거부하고 자기 방식의 경배를 고집했던 것입니다.

<5장 - 아담의 족보>
🔹아담의 족보에는 “죽으니라”는 말이 8번 반복됩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이제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족보와 대비되는 또 하나의 족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는 “낳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죽음과 관련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아담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6장 - 구원의 방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시며, 동시에 의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제시하셨습니다. 
🔹방주는 여러모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하는데, 14절에 언급된 ‘역청’의 히브리어 어근은 ‘속죄’의 어근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들어올지니라”고 명령하신 것에 주목하세요.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에 계셨고, 누구든지 방주를 통해 하나님 안에 들어온 자는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창세기 7장 ~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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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방주의 선장>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인이 죄인과 함께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교회의 휴거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17절에서 “방주가 땅 위로 들리더라”는 묘사는 휴거의 모습과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방주의 문을 닫은 것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문을 닫으신 것입니다(16절). 방주의 선장은 노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선장이 되셔서 방주 안에 있는 생명들을 지키시며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방주를 끝까지 책임지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8장 - 대홍수>
🔹”하나님께서 바람을 땅 위로 지나가게 하시니”(1절)라는 표현에서 ‘바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으로 번역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라는 표현과 대구를 이룹니다. “땅 위에서 다산하고 번성하게 하라”(17절)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8절과 대구를 이룹니다. 그런 점에서 대홍수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장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대목입니다(20-22절). 하나님께서는 이 번제 헌물을 받으신 후, 다시는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희생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할 것을 의미합니다.

<9장 - 무지개 언약>
🔹하나님께서는 전 지구적인 홍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주십니다. 이 언약이 중요한 이유는 이 언약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수 있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언약이 없었다면, 인류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죄 때문에 또 다시 심판받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왜 함 대신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미 복을 주신 사람을 저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창9:1). 게다가 분명히 노아는 가나안이 함이 지은 죄와 비슷한 죄를 지은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가나안이 함과 함께 그 범죄에 가담했을지도 모릅니다(24절을 통해 성적인 범죄가 있었음을 알수 있음). 사실 성경과 역사를 보면 가나안의 후예인 가나안 족속이 아주 사악한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가 합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0장 ~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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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 니므롯>
🔹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이 온 세상에 흩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11장은 그렇게 흩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11장은 10장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사건이며, 10장은 11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 가운데 특별히 강조되는 인물은 ‘니므롯’인데, 그는 강력한 사냥꾼으로서(창10:8-10, 대상1:10) 하나님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모험가들을 모아서 시날 땅을 정복하고 거기에서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네를 세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니느웨와 아시리아 왕국을 세웠다고도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앗수르(11절)가 그 일을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인물로 평가되며 바빌론 신비종교를 창설한 장본인으로 이해됩니다.

<11장 - 바벨>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창1:28)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고자 바벨을 건설합니다(4절).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벨을 심판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이유는(9절), 언어가 구별됨으로써 죄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면 죄가 쉽게 전파되겠지만, 언어를 경계로 민족과 국가가 나누어지면 죄가 확장되고 죄악된 것을 도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 밖에서 인간의 연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반역으로 이어집니다.

<12장 - 아브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과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땅과 민족은 국가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요소이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의 후손을 통해 한 국가를 세우려고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나라를 통해 메시아의 출현과 통치를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람이 파라오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정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파라오가 사래를 아내로 취하였다면, 메시아가 출현할 약속의 민족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의 출현을 막고자 하는 마귀의 영적 전쟁이 늘 있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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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 롯>
🔹롯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했다면, 아브람을 떠나 소돔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아브람 곁에 머무르려 했을 것이고, 양과 소를 줄이는 희생도 감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소돔의 풍요를 하나님의 언약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말의 주저함 없이 소돔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번영을 꿈꾸며 아브람을 떠난 롯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을 겪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14장 - 멜기세덱>
🔹아브람은 연합군에게 사로잡힌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게 되는데,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하며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습니다(18-20절).
🔹성경은 이 신비로운 인물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그의 계보, 출생, 죽음 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으며, 그는 선조나 후손 없이 하나님의 지명을 받고 홀로 서서 왕가의 제사장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영원토록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히브리서 7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이 멜기세덱은 아들 하나님의 현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5장 - 언약>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은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이니 두려워하지 말라(1절)”고 말씀하신 후, 하늘의 별들과 같이 아브람의 자손을 크게 번성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5절). 이에 아브람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런 믿음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는 ‘칭의’의 예표가 됩니다(롬4:22, 갈3: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해 친히 언약식을 이행하십니다. 당시 왕들은 반토막 낸 짐승 사이로 함께 지나가는 언약식을 시행하곤 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반토막 난 짐승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를 담은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함께 지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홀로 지나가십니다(17절). 이것은 아브람의 부족함 때문에 언약이 파기되는 경우는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언약을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6장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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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 하갈과 이스마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창12:2).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자녀와 관련한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본처인 사래가 아니라 하갈을 첩으로 삼아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대에는 이런 경우가 흔했기에, 아브람은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달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을 아브람의 장자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이스마엘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아랍 민족들의 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운 것들은 늘 이렇게 무너지거나 부작용을 낳습니다.

<17장 - 아브라함과 사라>
🔹16장은 아브람의 나이를 언급하며 본문을 끝내고, 17장은 아브람의 나이를 언급하며 본문을 시작합니다. 무려 13년의 시간이 흐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손의 언약을 주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언약의 성취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아브람은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자신의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언약을 확증하시고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과 함께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일의 통로와 도구가 된 사람은 영적 성장과 변화를 얻게 됩니다.

<18장 - 아브라함의 중보>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자손의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 그저 말씀만 하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눈에 보이는 아무런 증거가 없을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믿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23절)?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25절).”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환난 전 휴거의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창세기 19장 ~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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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 소돔과 고모라>
🔹본문은 소돔이 멸망당한 이유를 보여 줍니다. 소돔 사람들은 롯을 찾아온 천사들이 보통 남자들인 줄 알고 성적으로 희롱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소돔이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일상화된 도시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5절에서 “알리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롯을 찾아온 손님들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본문의 후반부는 어떤 과정을 통해 롯이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근친상간으로 출생한 두 아들은 모압과 암몬의 시조가 되는데, 두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늘 눈앞의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롯의 삶은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 소돔이 주는 풍요로움을 쫓아간 롯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킨 아브라함은 자손의 언약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20장 - 아브라함의 거짓말>
🔹이전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창12:10-20).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그때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일한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창12:3)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굳게 믿었다면,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만약 사라가 아비멜렉의 아내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이유입니다.

<21장 - 이스마엘의 추방>
🔹드디어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의 언약을 주신 지 무려 25년 만입니다. 당시 75세였던 아브라함은 벌써 100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히10:36). 그분의 정하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갈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 갈등의 원인을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도 바울이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때(갈4:29), 이스마엘의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삭은 언약의 성취로 출생했습니다. 그런 이삭을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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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시면서 모리아 지방에 있는 한 산으로 가라고 지시하십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꼬박 3일을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단순히 이삭을 바치기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렇게 먼 곳으로 가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일 동안 아브라함이 깊이 성찰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3일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련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말씀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그를 일으키실 줄로 생각하였으므로”(히11:19),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8절). 아브라함은 3일의 시간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친히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삭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각인시켰던 것입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2절). 이삭은 청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6절). 아버지 아브라함이 칼을 잡았을 때,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는 소리 지르거나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모습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삼았던 모습도 동일합니다(9절). 이삭은 번제에 쓸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삭은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진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지셨습니다. 모리아 산은 골고다 언덕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23장 - 사라의 죽음>
🔹23장은 연단의 과정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곳이 아니라 가나안 지경 안에 아내의 매장지를 마련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위해 지불한 은 사백 세겔은 지나치게 많은 금액입니다.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만으로 밭을 구입했습니다(렘32:9). 비록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고대 사회에는 물가 변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토착 민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아내의 매장지를 가나안 지경 안에 마련한 이유는 가나안을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땅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24장 - 이삭과 리브가>
🔹이삭의 신부를 찾는 이야기를 기록한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예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이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리브가는 교회의 모형이며, 엘리에셀은 성령님의 모형입니다. 엘리에셀을 통해 리브가가 이삭의 신부가 된 것처럼, 우리도 교회로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교회의 모형인 리브가가 얼마나 고귀한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막의 목마른 낙타가 보통 3분 안에 약 200리터의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에게는 10마리의 낙타가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그네를 섬기기 위해 거의 2000리터의 물을 우물에서 퍼서 낙타들에게 나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성도로서 이러한 섬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25장 ~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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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 에서와 야곱>
🔹이삭과 리브가로부터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장자권입니다. 당시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두 배로 받고, 집안의 제사장이 되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권리는 당연히 형 에서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아직 리브가 배 속에 있을 때에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이삭 가문의 장자로 선택하셨으며, 야곱이 소유하고 누리게 될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사건을 근거로, 구원이란 인간의 행위나 조건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설명합니다.

<26장 - 이삭의 순종>
🔹이삭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옵니다. 당연히 이삭은 먹을 것이 풍부한 이집트로 이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고 가나안에 계속 머무르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상황과 환경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창12:1-3)을 바라볼 것을 촉구하십니다. 
🔹결국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결과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이방 왕으로부터 아내를 지킬 뿐만 아니라, 백 배나 되는 열매와 심히 많은 가축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먼저 상호 보호 조약을 맺자고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순종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27장 - 이삭이 야곱을 축복함>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배 속에 있을 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심으로써 동생을 이삭 가문의 장자이자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선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서를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 축복할 때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삭은 에서만을 불러 비밀스럽게 그를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삭의 가정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삭을 기만한 리브가와 야곱도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으로서 축복권을 가진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바를 더 추구한 것이 일차적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 28장 ~ 30장

📖읽기: 창세기 28장 ~ 30장

<28장 - 야곱의 사닥다리 꿈>
🔹야곱은 에서의 위협 때문에 부모의 집을 떠납니다. 이때 이삭은 다시 한 번 야곱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축복에서는 “아브라함의 복”이 강조됩니다(4절). 비로소 이삭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정당한 계승자가 야곱임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향하는 야곱ㄱ의 마음은 두렵고 초조했을 것입니다. 고향에서 하란까지의 거리는 무려 900키로나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을 통해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사닥다리는 분리된 두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닥다리 환상과 함께 아브라함 언약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13-15절).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땅’과 ‘큰 민족’과 ‘복’을 야곱에게도 베푸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야곱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껏 야곱이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살았던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9장 - 라반이 야곱을 속임>
🔹야곱은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보다 더 영악한 삼촌 라반을 만나 속고 또 속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야곱에게 무의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마 라반의 모습 속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고, 속임수와 불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다음으시고 연단하시는 도구 중 하나로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은 종종 인간관계의 문제로부터 발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나의 모난 부분이 더욱더 다음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30장 - 야곱이 라반과 약속을 맺음>
🔹레아와 라헬의 수태를 통해 고난 당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므로”(22절), 주께서 레아가 미움받는 것을 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나”(창29:31).
🔹야곱은 줄무늬 있는 가축과 점 있는 가축과 얼룩진 가축을 얻기 위해 껍질 벗긴 가지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당시 민간에 전승되던 미신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의 책략이 성공한 듯 보이지만, 둘 사이에 인관 관계가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소유가 번창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지키신 결과이지, 야곱이 사용한 미신적 책략이 효과를 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장 ~ 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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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 야곱이 라반을 떠남>
🔹여전히 야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힘과 생각을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몰래 라반을 떠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인간적인 꾀와 속임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야곱의 기대와 달리 라반은 단 7일 만에 야곱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해하지 말 것을 그에게 엄중히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24절). 역시 이번에도 야곱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32장 - 마하나임>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난 순간,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마하나임’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마하나임은 ‘두 개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자기 자신의 군대만 보아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또 하나의 군대가 자신과 함께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야곱은 어떤 이유로 그분이 하나님이시거나 적어도 축복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비범한 자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26절). 그래서 야곱은 끈질기게 씨름을 하며 위골되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야곱은 사람과 씨름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형 에서와 씨름했고, 이후에는 라반과 씨름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씨름하며 끝까지 붙들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33장 - 야곱이 에서를 만남>
🔹지금껏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신의 꾀나 속임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에서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잔꾀를 썼지만, 결국 에서와의 화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맹신하며 인간의 한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토대 위에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야곱의 삶이 보여 주는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우리는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34장 ~ 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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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 - 디나 사건>
🔹야곱의 가정에 연거푸 끔찍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딸 디나는 살렘 지역의 통치자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은 여동생의 복수를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 때문에 야곱의 가정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공공의 적이 됩니다(30절). 
🔹그런데 야곱 또한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원래 야곱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에 정착했어야 합니다. 무사히 가나안으로 돌아오면, 벧엘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겠다고 서원했었기 때문입니다(창28:19-22). 하지만 야곱은 그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족의 가장으로서 벌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은 것도 화근이 된 것입니다.

<35장 - 야곱이 벧엘로 돌아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1절).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이에 야곱은 자신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라고 지시하며 벧엘로 돌아갑니다. 세상에 속한 삶으로부터의 회개를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아브라함 언약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하십니다(11-12절). 본문은 하나님께서 또 다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을 기록하며 그의 열두 아들을 언급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열두 지파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36장 - 두 민족>
🔹야곱과 에서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민족이 네 태 속에 있도다. 두 종류의 백성이 네 배 속에서부터 갈라지되…”(창25:23).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야곱과 에서가 나누어진다는 것. 둘째, 야곱과 에서가 각각 큰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36장은 이 말씀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첫째, 야곱과 에서는 그들의 많은 소유 때문에 함께 거할 수 없었으므로, 갈라지게 됩니다(7-8절). 둘째,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것처럼, 에서는 에돔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창세기 37장 ~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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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 - 요셉>
🔹이제 요셉에게 초점을 맞춰집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차지하는 분량은 무려 열네 장이나 됩니다. 요셉의 삶에는 극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지만, 형들의 미움을 받아 하루아침에 종이 된 것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결국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는 많은 영적 교훈과 배움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형이 되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인물 중에 가장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또한 요셉은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요셉을 선대한 보디발은 복을 받지만, 이스라엘을 억압한 파라오는 벌을 받습니다. ‘복’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3). 요셉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집트에 정착하고,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룹니다. 큰 민족과 관련한 연약의 성취입니다(창12:2). 큰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은 마침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정복합니다. 땅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1). 땅과 관련한 언약의 성취입니다(창12:1).

<38장 - 유다의 음란한 삶>
🔹유다의 음란한 삶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신 이유 중 하나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은 다른 지역과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음란한 곳이었기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계속 가나안에 머물 경우 그곳의 타락한 문화에 물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룰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입체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38장에는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수치스러운 근친상간을 통해 베레스가 태어나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에 베레스는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됩니다. 구원이 인간의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39장 - 요셉의 형통과 고난>
🔹요셉이 형통하는 대목에서 “주(LORD여호와)”라는 이름이 여러 차례 강조됩니다(2, 3, 5, 21, 23절). 요셉이 형통한 근거가 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보디발과 감옥의 간수는 요셉을 선대한 결과로 복을 받는데,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보여 줍니다.
🔹요셉의 삶은 배신과 모함과 좌절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기근을 피해 초목이 무성한 이집트의 고센 땅을 중심으로 장정만 60만에 이르는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요셉 때문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이유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40장 ~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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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 - 두 직무 수행자의 꿈 해석>
🔹본문에는 왕이 먹는 음료와 음식을 관리하는 직무 수행자 두 사람이 나옵니다. 고대에는 왕이 독살당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이 두 지책은 왕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 정도 되는 지위입니다. 요셉이 이들을 통해 석방의 희망을 품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기대는 물거품이 됩니다. 잔 맡은 직무 수행자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저 비극적인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41장 - 파라오의 꿈 해석>
🔹아무도 파라오의 꿈을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임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에는 모두 때가 있고, 하나님의 때에는 모두 그분의 선한 목적이 있습니다(전3:1). 이로써 하나님께서 요셉을 연단하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동안의 고난을 통해 요셉의 신앙이 얼마나 연단되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파라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어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16, 25, 28, 32, 51, 52절). 그러자 이집트의 파라오조차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 생깁니다(38, 39절).

<42장 - 요셉과 형들의 재회>
🔹온 땅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구하려고 이집트를 방문합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를 찾았을 것이므로, 총리 요셉이 그의 형들을 만난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근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주목할 것은 요셉의 행동입니다. 왜 그는 시므온을 인질로 남겨 두었을까요? 이것은 형제들이 자신을 이집트에 팔았던 상황을 재연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버렸던 형제들이 또 다시 시므온을 버리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형들이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후회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요셉은 숨어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3장 ~ 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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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 - 요셉과 베냐민의 재회>
🔹시므온을 되찾기 위해서는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요셉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과 상실감 때문에 베냐민이 이집트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완고했던 야곱도 자신의 고집을 꺾게 됩니다. 이제 요셉의 모든 형제들이 이집트에 이르게 되고, 그들 모두가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됩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요셉에게 계시하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창37:6-7). 
🔹오랜만에 동생 베냐민을 만난 요셉은 그동안의 그리움이 복받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또 울음을 터뜨립니다. 요셉의 고난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며,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함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상기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44장 - 베냐민의 누명>
🔹요셉은 의도적으로 동생 베냐민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형들이 베냐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형들은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써 깊은 슬픔을 나타냅니다.
🔹더 나아가 베냐민뿐만 아니라 자신들 모두가 노예로 남겠다고 자원합니다. 특히 유다는 베냐민을 풀어 주기만 한다면 자신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하며 아버지 야곱을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더 이상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때의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45장 - 요셉이 형들을 용서함>
🔹형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한 요셉은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종으로 팔린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으므로 과거의 사건과 관련해 유념치 말라고 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과의 갈등,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이 모든 고난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고 큰 그림을 위한 퍼즐 조각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셉은 “당신들을 위해 후손을 땅에 보존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니”(7절)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아브라함 언약, 특히 ‘큰 민족과 관련한 연악’의 성취를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46장 ~ 48장

📖읽기: 창세기 46장 ~ 48장

<46장 -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들어감>
🔹이제 야곱(이스라엘)의 모든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요셉이 주도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아브라함 후손의 이집트 이주는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창1:13-16)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가겠고 또 충분히 나이 들어 묻힐 터이나 그들은 네 세대 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충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요셉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자 통로였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면(롬8:28)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도 그분의 원대한 계획을 이뤄가고 있는 귀한 조각들임을 믿어야 합니다.

<47장 - 야곱의 당부>
🔹야곱 가문이 이집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고센 땅이 강조됩니다. 고센 지역은 목축에 적합했는데, 이집트인들은 목축을 가증스럽게 여겼으므로 고센은 이집트인 거주지와 문화적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집트의 종교와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게 됩니다.
🔹후반부에 기록된 야곱의 당부는 언약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야곱은 이집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가나안을 잊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매장지는  반드시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을 여전히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48장 - 야곱의 축복 >
🔹 야곱은 요셉을 낳아서 17년을 양육했고 요셉은 야곱이 죽기 전 17년을 부양하고 임종을 지켰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기만 추구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축복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파라오를 축복하고(창47:10)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고, 요셉과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워서 축복합니다.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는 말씀을 후대에도 전하게 된 것입니다(19절). 실제로 에브라임은 12지파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지파로 성장합니다. 출애굽 후 에브라임 지파는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로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고, 그들이 차지한 땅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했습니다.

창세기 49장 ~ 50장

창세기 49장 ~ 50장

<창49장 - 야곱의 축복>
🔹이제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를 축복합니다. 야곱의 축복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의 축복은 예언적 성격을 가집니다. 야곱의 축복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유다입니다. 야곱이 10절에서 언급한 ‘실로’는 메시아를 뜻하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때까지 유다의 정부가 끊이지 않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 왕이 유다의 후손이며,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르우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첩을 범했기 때문입니다(창35:22). 실제로 르우벤 지파에서는 단 한 명의 사사와 대언자도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도 비슷합니다. 야곱은 그들이 나뉘며 흩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레위 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모든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져 살게 되고, 시므온은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스불론은 항구에 거한다는 축복을 받는데, 실제로 스불론 지파는 지중해 근처에서 정착합니다. 아셀의 축복은 풍성한 수확인데, 실제로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의 평야 지대를 차지합니다. 

<창50장 - 야곱과 요셉의 죽음>
🔹야곱은 자신의 시신이 이집트가 아니라 가나안에 매장되기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똑같은 당부를 한 것으로 보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24절). 칠십 일의 애도 기간은 이집트 왕실에서 행해지던 관습입니다. 당시 요셉이 왕족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일로 인해 요셉을 두려워하고 있는 형들을 향한 요셉의 말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전능하시고 입체적으로 일하는 분이신지를 보여 줍니다.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을 선이 되도록 계획하시고 이루셔서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두게 하셨나니”(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