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레위기 1장 ~ 3장

<레1장 - 번제 헌물>
🔹레위기 1-5장에는 다섯 가지의 희생 제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희생 제사는 예수님의 사역의 예표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희생물의 마침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히10:1-14). 1장은 ‘불에 태우는 희생물(번제 헌물)’입니다. 번제 헌물은 소 떼나 양과 염소 떼에서 취했습니다(2절). 소는 종으로서 예수님의 충실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양은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드러냅니다. 비둘기는 예수님의 죄 없는 순결한 속성을 드러냅니다. 
🔹각각의 번제 헌물은 머리에 안수함으로써(4절) 죄를 전가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시는(요1:29) 진리를 앞서 보여 준 것입니다. 

<레2장 - 음식 헌물>
🔹2장은 음식 헌물입니다. 피가 없는 유일한 제사이며, 다른 헌물과 함께 드려졌습니다. 음식 헌물은 그냥 곡식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드려야 했는데,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과정은 헌물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 즉 정성을 담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 헌물에는 절대 누룩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4절). 이것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고전5:6-8). 또한 음식 헌물에는 기름을 뿌리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 헌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만 했는데, 소금은 누룩과 반대로 부패를 방지하여 음식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서 이것은 하나님과의 친교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13절). 

<3장 - 화평 헌물>
🔹화평 헌물은 서원을 성취하면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거나 개인의 헌신을 충족하기 위한 자원 헌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물로 드릴 수 있는 짐승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 화평 헌물을 드렸는데, 다만 희생물이 흠이 없어야만 했습니다.
🔹화평 헌물의 가슴과 오른쪽 어깨는 그것을 드린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을 드린 사람의 몫이 되었고 그는 자기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먹었습니다. 화평 헌물은 속죄를 의미하고, 따라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뜻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과의 원활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4장 ~ 6장

<4장 - 죄 헌물>
🔹1-3장에 소개된 세 가지 헌물은 모두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이었습니다. 4-5장에 나오는 두 가지 헌물은 향기로운 냄새와 상관이 없습니다. 4장은 죄 헌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가 되셨음을 의미합니다(고후5:21). 죄 헌물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들을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가(그들이) 용서받으리라.”(20, 26, 31, 35절). 
🔹3-12절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13-21절은 회중이 범죄했을 때, 22-26절은 왕이나 통치자가 범죄했을 때, 27-35절은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입니다. 주목할 점은 “진영 밖에서”(12, 21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디서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히13:13)

<5장 - 범법 헌물>
🔹5장은 범법 헌물입니다. 범법 헌물은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죄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을 경우 드리는 희생 제사입니다. 
🔹범법 헌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신 것을 예표합니다. 범법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르는데, 그것을 위한 희생물로는 언제나 흠 없는 숫양을 바쳐야 했습니다(15절).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헌물을 자신의 몸으로 단 한 번 영원히 드리신 것입니다(히10:14). 

<6장 - 각 헌물의 구체적 지침>
🔹속건제(6:1-7)는 보상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피해자를 위한 보상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범법 헌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을 경우,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6-7장은 각각의 헌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소개됩니다. 희생 제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6:8-13은 번제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6:14-23은 음식 헌물에 관한 법인데, 아론과 그의 아들들,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16절). 이것은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 양식으로 삼는 것과 같습니다(요6:53). 6:24-30은 죄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죄 헌물은 매우 거룩한 것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레위기 7장 ~ 9장

<7장 - 각 헌물의 구체적 지침>
7:1-10은 범법 헌물에 관한 법입니다. 7:11-38은 화평 헌물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3번째 헌물이었던 화평 헌물이 마지막에 언급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가 바로 우리의 화평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8장 - 제사장이 거룩히 구별됨>
🔹8장은 제사장직을 거룩히 구분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면 그의 아들들은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 아론의 아들들이 될 필요가 있듯이,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거룩히 구분되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사장들은 일단 씻음을 받아야 했습니다(6절). 성도들 또한 ‘다시 태어남의 씻음’(딛3:5)을 받았습니다. 둘째, 제사장은 제사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와 거룩함의 새 옷(새 사람)을 입은 자들입니다(엡4:24). 셋째,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고후1:21, 요일2:20). 

<9장 - 제사장 사역의 시작>
🔹9장은 제사장으로 임명 받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처음으로 시무를 하는 장면입니다. 22-24절을 주목해서 보세요.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고 죄 헌물과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 드리기를 마치고 내려 오니라.”(22절) 그리고 23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오자, 주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23절). 그 다음 24절에서 주의 불이 나오고,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엎드렸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지상 사역을 모두 드리시고 하늘에 가셨다가 다시 백성에게 오실 때, 백성들은 영광을 보며 그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으로 드려진 희생 제사(헌물)에 자신의 영광으로 회답하십니다(23절).

레위기 10장 ~ 12장

<10장 - 이상한 불>
🔹10장은 이상한 불을 드린 나답과 아비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절차와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기준에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저주의 대상임을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9-11절은 이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암시해 줍니다. 곧바로 모세가 포도주와 독주를 금한 것으로 보아(9절), 나답과 아비후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술은 제사장에게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이들에게는 제사장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16-20절은 율법의 형식보다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심판을 받아 죽게 되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어야 할 죄 헌물의 염소를 먹지 않고 태워 버렸습니다(15절). 모세는 율법의 형식에 어긋난다며 이를 크게 책망했습니다(17-18절). 그러자 아론은 이에 대해 변호하기를, “오늘 내가 죄 헌물을 먹었더라면 주께서 보시고 그것을 받으셨으리요?”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통회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했던 것입니다. 

<11장 -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11장은 음식에 대한 법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셨습니다. 이런 법이 정해진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과 종교적인 이유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구분하셨습니다(레20:26). 이런 율법을 시민법이라고 하는데, 신약시대가 열리고 폐지되었습니다(행10:9-28).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분별하며 사는 것은 도덕적인 영역에서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짐승을 부정하다 하신 것은 그 짐승이 악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정한 것으로 구별된 짐승 역시 창조 세계의 일부분으로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5)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시체가 샘물과 웅덩이는 부정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36절). 이것들은 정결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예수님께서는죽은 자나 병든 자를 만지셔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함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12장 - 출산한 여인과 아이에 관한 법>
🔹토끼와 돼지를 먹으면 왜 부정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를 낳으면 왜 부정해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룩하게 되는 일이 순종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별을 지시하신 다음,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 이스라엘 역시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분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해가 되어야만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순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말씀에만 순종한다거나 순종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이 될 때만 순종하는 것은 참된 순종이 아닙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의학적으로 일생에 혈액응고 물질이 최고치에 달하는 순간은 태어난 지 8일째라고 합니다.

레위기 13장 ~ 15장

<13-14장 - 나병에 관한 법>
🔹13-14장은 거룩한 민족 가운데 있는 나병에 관련된 법입니다. 나병은 죄의 속성과 가장 비슷한 병입니다. 나병은 처음에 자각 증세가 없고, 몸 안에 깊이 잠복해 있다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게다가 나병은 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다른 신체 기관들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리면 격리하는데, 이것 역시 죄와 비슷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격리시키기 때문입니다. 나균은 옷과 집안의 사면 구석구석까지 침투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죄의 속성과 일치합니다. 
🔹13장이 부정한 사람을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에 관한 규례라면, 14장은 격리되었던 사람을 공동체로 돌아오게 하는 것에 관한 규례입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것과  반대로, 정결 의식에 사용된 새는 공동체 밖으로 날려 보내야 합니다. 이때 새는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죄를 상징하는 새를 날려 보낸 후에야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장 - 유출에 관한 법>
🔹15장은 유출에 관련된 법입니다. 유출은 생리와 더불어 몸에서 무엇인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1-18절은 남자의 유출에 관한 내용이며, 19-33절은 여성의 유출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출이 있는 자가 접한 것이라면 옷이든 그릇이든 사람이든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합니다(11-13절). 
🔹인간의 육신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몸에서는 더러운 것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은 씻음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육신은 언제나 불결한 것을 쏟아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말씀의 물로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의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대속 없이 거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위기 16장 ~ 18장

<16장 - 속죄일과 속죄 염소>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을 지켜야 합니다(34절). 속죄일이 제정된 이유는 아론의 두 아들이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가려다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2절). 이스라엘은 속죄일을 통해 과거의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속죄일 규례의 첫 번째 단계는 대제사장 아론이 자신의 정결함을 위해 수송아지와 숫양을 희생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 전체의 정결함을 위해 숫염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희생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숫염소 한 마리는 광야로 보내야 하는데, 이 염소를 ‘속죄 염소’ 혹은 ‘아사셀’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염소’를 뜻하는 ‘에즈’와 ‘떠나가는’을 뜻하는 ‘아젤’의 합성어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불법을 전가 받은 후(21절) 이스라엘을 떠나는 염소인 것입니다. 이 속죄 염소는 우리의 모든 불법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사53:6).
🔹참고: 31절에 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금식을 말하는 것입니다(행27:9). 

<17장 - 피에 관한 법>
🔹7절은 마귀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것을 금하시는 경고입니다. 그래서 헌물은 반드시 성막에서 드려야 한다고 명하십니다(4절). 성막 외의 장소에서 헌물을 드리면,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에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11절은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고(레17:11), 하나님께서 피로써 우리의 혼을 속죄하시기 때문입니다(레17:11). 피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그래서 피를 경솔하게 대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18장 - 음행에 관한 법>
🔹18장은 주로 음행에 관한 규례입니다. 핵심은 이집트와 가나안의 음란한 성문화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몰렉 숭배에 관한 명령(21절)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우상 숭배가 육체적 간음을 조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는 우상의 신전 안에 합법적인 창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알 신전입니다. 바알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폭풍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당시는 농경 사회였으므로 기상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던 바알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바알 숭배는 여사제와의 집단 성관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히에로스 가모스’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자극받은 바알이 땅에 비를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레위기 19장 ~ 21장

<19장 - 행실에 관한 여러 가지 규례>
🔹19-22장은 행실에 관련된 법이 계속 이어지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을 금하는 구체적인 예가 나옵니다.
🔹5-8절은 화평 헌물의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화평 헌물은 반드시 이틀 안에 먹어야 합니다. 이 규칙은 화평 헌물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헌물로 드린 사람 혼자서 그 많은 양의 고기를 이틀 안에 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화평 헌물을 이틀 안에 다 먹기 위해서는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평 헌물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과도 화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일4:21). 9-10절 말씀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 밭의 모퉁이에 있는 곡식과 떨어진 이삭은 수확해선 안 될까요? 왜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선 안 되고,  떨어진 열매는 주워선 안 될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10절).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유 안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성도들의 중요한 덕입니다(고후8:14-15).

<20장 - 행실에 관한 여러 가지 규례>
🔹20장은 18장을 반복하면서 죄에 대한 처벌을 강조합니다. 반드시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범죄 가운데, 부모를 저주하는 행위가 포함된 점이 특이합니다(9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국가였고, 그 언약은 주로 가정을 통해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출12:26).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역시 죽음으로 다스려집니다. 그것이 단지 가나안의 풍습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성경적인 세계관과 완전히 대치되는 것으로서, 한 가지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경계선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경계는 그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경계, 여자와 남자라는 경계, 사람과 짐승이라는 경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창조 세계의 질서입니다.

<21장 - 제사장의 행실에 관한 법 >
🔹21-22장은 제사장의 행실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제사장에게는 훨씬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구별된 것처럼, 제사장은 이스라엘 가운데 구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털을 깎거나 수염 양쪽을 깎아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가나안의 장례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상 숭배 행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사장은 가나안의 풍습 앞에서 더욱 엄격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결혼과 관련해서도 신중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창녀나 이혼한 여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과부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처녀하고만 결혼할 수 있을 뿐 아니라(13-14절), 부모의 시체를 만지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11절).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벧전2:5-9). 구약 시대에는 왕, 대언자, 제사장이라는 구별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자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제사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신약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 또한 자발적으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딤전3:1-13, 딛1:5-9). 직분의 구별은 사라졌지만, 리더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관한 규례 중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을 수 없다는 조항이 특이합니다(22:28). 이러한 규례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가나안의 풍습이었거나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레위기 22장 ~ 24장

<22장 - 제사장의 행실에 관한 법 >
🔹21-22장은 제사장의 행실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특이하게도 제사장에게는 훨씬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구별된 것처럼, 제사장은 이스라엘 가운데 구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자기 머리털을 깎거나 수염 양쪽을 깎아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가나안의 장례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상 숭배 행위와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사장은 가나안의 풍습 앞에서 더욱 엄격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결혼과 관련해서도 신중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창녀나 이혼한 여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과부와의 혼인이 금지되고 처녀하고만 결혼할 수 있을 뿐 아니라(13-14절), 부모의 시체를 만지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11절). 
🔹하지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만인 제사장’ 시대입니다(벧전2:5-9). 구약 시대에는 왕, 대언자, 제사장이라는 구별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그러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자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제사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신약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 또한 자발적으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딤전3:1-13, 딛1:5-9). 직분의 구별은 사라졌지만, 리더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에 관한 규례 중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을 수 없다는 조항이 특이합니다(22:28). 이러한 규례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가나안의 풍습이었거나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23장 - 이스라엘의 일곱 명절>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행실’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시간’을 말씀하십니다. 각 명절의 기간과 의미는 첨부한 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4장 - 제사장의 직무와 신성모독>
🔹24장은 제사장의 직무와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들을 다루는 법입니다. 정기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와 달리, 등잔불은 매일, 보여 주는 빵은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이 단락이 명절 규례 바로 뒤에 위치하는 것은 전 국민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가 중요한 것처럼 날마다 해야 하는 소소한 일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를 처벌하는 사건이 소개됩니다. 특이한 점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헌물을 드릴 때 짐승에게 안수하여 죄를 전가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부패를 넘어서서 이스라엘 전체를 부패시킨 행위입니다. 그래서 안수를 통해 공동체의 죄를 범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레위기 25장 ~ 27장

<25장 - 안식년과 희년>
🔹25장은 두 가지 중요한 해를 대룹니다. 안식년과 희년입니다. 안식년은 칠 년마다, 희년은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절기입니다. 이 두 절기에는 농사를 지어선 안 됩니다. 생명의 근원이 땅과 노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저절로 자라난 곡식과 과일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안식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희년의 ‘주빌리(jubilee)’라는 말은 ‘소리 나다’ 혹은 ‘흐르다’를 뜻하며 희년이 다가옴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가리켰습니다. 희년에는 아무도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않았으며 땅이 저절로 내는 것들로 채움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상속물을 되찾았고, 히브리 사람으로 종이 된 사람들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를 얻었으며, 7월 10일은 속죄일로서 산헤드린은 이때에 나팔을 불게 하였는데, 이때 종들은 곧바로 자유를 얻고 땅은 본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같은 법은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거나 많은 땅을 영원히 소유하거나 빚이 너무 늘어나거나 사람이 영원토록 종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긍휼의 법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 간에는 어느 정도 평등이 유지되었고 땅은 원래의 지파에 따라 영원히 구분되어 나뉘었으며 모든 사람의 계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배분해 주는 분이시며, 자기들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26장 - 복의 약속과 징계의 경고>
🔹26장은 약속의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의 조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국제 조약 같은 중요한 법적 문서들은 그것을 지켰을 때 받는 혜택과 어겼을 때 받는 저주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형식이 이곳 26장과 신명기 2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본문의 강조점은 순종하여 받는 복이 아니라 불순종하여 받는 징계에 있습니다. 우선 양적인 측면에서도 벌에 관한 부분이 세 배 가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쉽게 타락하는 마음을 잘 아셨기 때문이고, 또 타락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27장 - 서원과 십일조>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한 것을 무를 수 있을까요? 특별한 경우에 한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서원한 것을 무르기 위해서는 처음 드린 가격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강조점은 하나님께 경솔하게 서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있습니다. 서원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지는 않지만,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신23:21-23, 전5:2-7, 잠20:25).
🔹신정 정치 하에서 운영되던 율법의 십일조는 신약의 도래와 함께 분명히 사라졌지만 십일조의 정신과 원리 즉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들 수입의 일정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과 주의 일을 위해 헌금을 할 때 주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신약성경에 수입의 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성경 전체를 볼 때 수입의 십분의 일 이상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기에 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도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서 헌금을 드리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교회에서 이런 헌금을 율법의 십일조로, 강제 규정으로 세금을 걷듯 걷는 것은 신약시대의 헌금의 원리(고후9:6-7)와 배치되므로 경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