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 출애굽기 1장
- 출애굽기 2장 ~ 4장
- 출애굽기 5장 ~ 7장
- 출애굽기 8장 ~ 10장
- 출애굽기 11장 ~ 13장
- 출애굽기 14장 ~ 16장
- 출애굽기 17장 ~ 19장
- 출애굽기 20장 ~ 22장
- 출애굽기 23장 ~ 25장
- 출애굽기 26장 ~ 28장
- 출애굽기 29장 ~ 31장
- 출애굽기 32장 ~ 34장
- 출애굽기 35장 ~ 37장
- 출애굽기 38장 ~ 40장
출애굽기 1장
📖읽기: 출애굽기 1장
<출1장 - 파라오의 박해>
🔹야곱과 함께 이집트에 들어간 사람은 70명에 불과했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 장정만 60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큰 민족’과 관련한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창12:2).
🔹하지만 반대 세력의 핍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라오는 남자 아이를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가장 강력한 권력자였던 파라오의 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언약한 여인들에 의해 무산됩니다(17절).
출애굽기 2장 ~ 4장
📖읽기: 출애굽기 2장 ~ 4장
<2장 - 모세>
🔹파라오는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강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출1:22). 그러자 아므람과 요게벳은 모세를 구하고자 그를 그 강으로 데려 갔습니다. 모세는 죽음의 강 위에 있었지만 궤 안에 있음으로 인해 안전했습니다. ‘궤(ark)’라는 단어는 방주, 언약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원한 멸망의 강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에게 발견됩니다. 공주는 강에서 건져낸 아이라는 뜻으로, ‘견져내다’라는 의미의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이제 모세(건져내다)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내는’(모세)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3장 - 스스로 계신 이>
🔹하나님께서 광야의 모세를 찾아오십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을 건져낼 하나님의 때가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건져내겠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11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12절). 모세는 “내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답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너는 내가 함께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왕자 모세는 하나님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목자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성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I AM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물으면 “I AM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14절)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I AM은 두 가지 의미의 문장입니다. AM을 완전 자동사로 보면, 그 자체로 완전한 문장이 되어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또한 AM을 불완전 자동사로 보면, 뒤에 보어를 필요로 하는 문장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보어를 주시지 않으셨으므로 그분께서 모세에게 하신 I AM이란 말에는 뒤에 무엇이나 다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다 되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4장 - 모세의 죽을 위기>
🔹24절은 언뜻 보면 의아합니다. 사명을 받아 이집트로 향하고 있는 모세를 왜 하나님께서는 이제 와서 죽이려고 하시는 걸까요? 십보라의 행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자 비로소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아 주십니다(26절). 지금껏 모세는 할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증거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언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언약은 ‘할례의 언약’입니다(창17:11-14). 하지만 모세는 자식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디안 땅에 살다 보니 언약에서 제외된 것처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받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난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억하사 언약대로 행하려고 하시는데, 모세가 그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행하지 않은 채 이집트로 가려고 하자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교훈을 보여 줍니다. 첫째, 모세는 출애굽의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없이도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둘째, 순종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5장 ~ 7장
📖읽기: 출애굽기 5장 ~ 7장
<5장 - 파라오의 강퍅함>
🔹드디어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파라오의 탄압이 더 극심해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기에 이릅니다.
🔹때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큰 손해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더 큰 이익 때문이 아닙니다. ‘순종’ 그 자체가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6장 -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요히 인도해 내시지 않고 강한 능력의 손을 펼쳐서 모세로 하여금 주의 역사를 보게 하려 하십니다(1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때로 이런 강력한 시청각 교육을 통해 믿음을 세워 주십니다. 믿음은 삶의 체험을 통해 배워질 때 진정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3절)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전능자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여호와는 ‘사랑과 구원의 주’라는 의미로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칭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언약을 맺었을 뿐, 그 약속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히11: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약속을 받지 못했기에 그들의 머리 속에는 그 약속을 능히 이루실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세를 통해 그 약속을 이루심으로써 모세를 비롯한 후대들은 그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7장 - 심판들의 시작>
🔹이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이적들이 차례차례 소개됩니다. 소위 ‘열 가지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표적’ 또는 ‘이적’으로 불리고 있으며(출4:21, 7:3, 7:9, 8:23),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파라오의 왕관에는 뱀의 형상을 한 이집트의 수호신 ‘와디에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바뀌어 파라오의 뱀을 삼킨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전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7장의 나일강이 피로 변한 재앙의 의미는 8장의 아홉 가지 재앙과 더불어 설명하겠습니다.)
출애굽기 8장 ~ 10장
📖읽기: 출애굽기 8장 ~ 10장
오늘 본문을 포함해 7-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집트와 파라오를 심판하시기 위해 행하신 10가지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시는 전능자라는 사실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재앙의 이적들은 단순히 이집트를 징벌하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우상들을 벌하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출12:12). 아래 첨부한 표를 참고하시면서 본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11장 ~ 13장
📖읽기: 출애굽기 11장 ~ 13장
<11장 - 마지막 재앙의 경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출3:7)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란 사실은 심판을 통해 입증됩니다. 이집트는 전무후무한 재앙을 경험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 사실은 마지막 재앙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실 것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개 한 마리도 자기 혀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7절). 개 한 마리도 짖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평안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많은 이적들을 보이심으로 온 백성에게 자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9절).
<12장 - 마지막 재앙과 유월절>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이 이루어지는 날 유월절이 제정됩니다. 유월절은 ‘넘어가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을 심판하시지 않고 넘어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유월절 사건의 핵심은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를 문기둥에 발라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린양이 대신 죽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어린양의 피 안에 있으면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요1:29),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시고(벧전1:19),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고전5:7)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의 죄들의 사면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13장 - 무교절 제정>
🔹이집트는 당대 최강대국입니다. 그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우상들과 치른 전쟁에서도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창15:13-14). 바로 이때 무교절이 제정됩니다.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간 빵을 먹을 수 없습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종종 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네 모든 지역에서 네게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죄는 단절되면 단절될수록 좋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무교의 명령을 주신 것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죄를 멀리하는 정결한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블레셋의 ‘가까운 길’이 아니라 홍해의 ‘광야 길’을 통해 인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7-18절). 그들이 전쟁을 보면 이집트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깝고 쉬운 길’이 아니라 ‘고난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다면, 분명히 그렇게 하실 만한 선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 16장
📖읽기: 출애굽기 14장 ~ 16장
<14장 - 홍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는데, 결과적으로 홍해와 광야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되고 맙니다. 이 점이 파라오를 자극합니다(3절). 파라오는 지금이야말로 이스라엘에게 복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결국 이집트의 병거 부대는 바다에 수장되고, 주(LORD여호와)라는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됩니다(4, 8절).
🔹홍해 바다는 이스라엘에게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서 그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 구절을 또한 재림의 예표로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 때에 저 하늘에 있는 깊음의 바다(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에 사이에 있는 바다 - 계4:6)를 통과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공중으로 들림받을 것이며, 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깊음의 바다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15장 - 이스라엘의 노래>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노래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부른 이 노래는 홍해를 건넌 후 전능하시고, 무한광대하신 하나님의 신성과 두려움을 깨달은 후에 심중에서 입으로 흘러나온 노래입니다. “(시편33:1) 오 의로운 자들아, 너희는 주를 기뻐하라. 찬양은 곧바른 자들이 마땅히 행할 바로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후 약속의 땅으로 가는 처음 여정에서 마라의 쓴 물을 만나지만 하나님을 통해 그것이 순수한 물로 바뀌고, 종려나무 그늘도 얻게 됩니다. 험란한 이 세상에서의 믿음의 경주와 십자가를 지는 일은 늘 마라의 쓴 물처럼 보이지만, 인내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에게는 그분께서 반드시 좋은 결말을 주실 것입니다(약5:11).
<16장 - 만나>
🔹15장과 16장은 완전히 상반됩니다. 15장은 감사와 찬양의 장인 반면, 16장은 불평의 장입니다. 불평이 터져 나온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들을 때문입니다. 아마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함께 ‘고생 끝 행복 시작’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라의 ‘쓴 물’(출15:23), ‘배고픔’(3절), ‘목마름’(출17:1)과 같은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자, 한때 감사의 대상이었던 하나님은 불평의 대상이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로부터 빵을 비같이 내리리니”(4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늘은 초월적이며 신적인 곳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단지 육신의 배고픔만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생명을 위해 신뢰해야 할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6:51)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만나는 한 사람당 일 오멜씩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대략 2리터 정도 되는 양입니다. 특이하게도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18절) 않았습니다. 많이 거둔 자들이 적게 거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근거로, 넉넉한 자는 부족한 자와 나누어 균등함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고후8:15). 반면에 욕심을 부려 아침까지 남겨 둔 만나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서 못 먹게 되었습니다(20절).
출애굽기 17장 ~ 19장
📖읽기: 출애굽기 17장 ~ 19장
<17장 - 아멜렉과의 전쟁>
🔹모세는 마실 물이 없어 불평하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주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증명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간구의 대상이자 전적인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지, 불평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물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불평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평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이처럼 놀랍습니다.
🔹아멜렉과의 전젱에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여기에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시편에는 손을 들고 부르짖는 성도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시28:2, 77:2, 134:2). 둘째, 들어올린 손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보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리하여 승리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상기시켰다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와 영적 전쟁에 있어서도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나으며, 세 겹 줄은 빨리 끊어지지 않습니다(전4:9-12).
<18장 - 모세의 장인 이드로>
🔹모세를 찾아온 이드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는 증거입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조언을 듣고 중간 지도자를 세우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은 국가의 체계를 갖추어 갑니다. 또한 이것은 ‘분담 사역’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19장 - 시내산 언약>
🔹전반부의 핵심이 출애굽 사건이었다면, 후반부의 핵심은 언약식 체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이 아니라 정반대인 시내산으로 이끄십니다. 그곳에서 십계명으로 요약되는 ‘시내산 언약’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제사장 왕국’과 ‘거룩한 민족’입니다(5-6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제사장 왕국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 왕국이란 말은 온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고, 그분의 거룩한 명령과 말씀을 가르쳐 주는 국가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 이방 민족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별된 지침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십계명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출애굽기 20장 ~ 22장
📖읽기: 출애굽기 20장 ~ 22장
<20장 - 십계명>
🔹십계명 중 처음 네 가지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섯 가지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의 두 가지 명령에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매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2:37-40).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으로 은혜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십계명의 모든 조항은 첫 사람 아담부터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양심에 새겨진 도덕 법규’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의 경우 신약 성도들이 유대인들과는 달리 토요일을 강제적인 안식일로 지키지는 않지만 한 주에 하루를 거룩히 구분하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되새긴다는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21장 - 종과 폭행에 관한 법>
🔹21장부터 23장에 나오는 법은 십계명의 해설판과 같은 것으로서 일반 사회 생활의 기초가 되는 형법과 민법, 도덕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정 국가로 출범한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법을 제정하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회 규범은 이웃 사랑이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본문 역시 이웃 사랑에 기초한 법으로서 내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지켜질 수 있습니다.
🔹1-11절은 종에 관한 규정입니다. 율법이 종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노예제를 옹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종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종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면, 당시 종의 인권이 남용되고 박탈당할 가능성은 더 컸을 것입니다. 12-36절은 폭행과 보상에 관한 규정입니다. 율법이 폭행과 보상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생명의 소중함 때문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24절)라는 규정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이것은 복수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원칙입니다.
<22장 - 재물과 배상에 관한 법>
🔹배상에 관한 규정(1-15절)이 소개됩니다. 당시 보편적 기준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출21:24)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예를 들어 소 한 마리의 피해는 소 한 마리가 아니라 소 다섯 마리로 갚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도적적으로 더 탁월한 나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도덕적 탁월함의 기준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도덕적 기준이 ‘은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규범(21-27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약자인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나라가 되어야지, 그들을 이익의 대상으로 삼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담보로 잡은 옷이라도 약자를 위해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27절).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대로 우리도 남에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원칙을 적용하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 25장
📖읽기: 출애굽기 23장 ~ 25장
<23장 - 공의와 안식에 관한 법 등>
🔹공의에 대한 법, 안식에 대한 법에도 은혜와 긍휼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하세요. 원수를 은혜롭게 대하고(4-5절) 나그네를 배려하며(9절)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합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을 섬기는 자가 받게 될 복을 말씀하십니다(20-33절). 핵심은 풍요와 건강과 다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약속하시는 이유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풍요의 신, 건강의 신, 다산의 신이 각각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풍요의 신 바알, 다산의 신 아세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명백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24장 - 피의 언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들과 ‘피의 언약식’을 체결하십니다. 제단에 뿌려진 피는 하나님의 용서와 속죄를 상징하며, 백성들에게 뿌려진 피는 순종을 요구하는 멩세를 상징합니다. 절반은 피의 은혜를, 나머지 피는 거룩한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은혜는 결코 거룩한 삶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목적이 거룩한 삶과 선한 행실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딛2:14).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은 모두 피를 통해 확증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히9:22). 그래서 구약에서 흐른 모든 피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피에 대해 말씀을 주시고,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셨는데, 이는 피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며(레17:14),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합니다(레17:11).
<25장 - 성소>
🔹하나님께서 성소 건축을 명하십니다. 성소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장소’인데, 성막으로도 불립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소 건축을 명하시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8절에서 이렇게 설명됩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이처럼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집입니다.
🔹이어서 성막 내부에 비치될 세 가지 기구를 말씀하십니다. 증언궤(10-22절)와 보여 주는 빵을 두는 상(23-30절)과 등잔대(31-40절)입니다. 증언궤는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기구로서 언약궤(신10:8) 또는 긍휼의 자리(출25:17)로도 불립니다. 언약궤로 불린 것은 그 안에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을 안치했기 때문이고, 긍휼의 자리로 불린 것은 용서와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그 위에 뿌렸기 때문입니다(레16:15).
출애굽기 26장 ~ 28장
📖읽기: 출애굽기 26장 ~ 28장
<26장 - 휘장>
🔹성막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집니다. 가나안으로 행군하는 중이기 때문에 전체 구조물은 운반 가능한 구조로 제작됩니다. 특이점은 성막을 둘로 나누는 휘장입니다(31절). 이 휘장을 기준으로 한쪽은 성소로, 또 한쪽은 지성소로 나눠지는데(33절), 성소에는 보여 주는 빵을 두는 상과 등잔대가 비치되고,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비치됩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가 휘장으로 막혀 있다는 것은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롬3:23).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던 죄의 장막을 허무셨음을 뜻합니다.
<27장 - 거룩한 의복>
🔹대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의복이라고 명명됩니다(4절). 거룩한 의복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재료가 성막 재료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고,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대제사장이 거룩한 장소에서 봉사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발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대제사장들이 맨발로 섬겼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모세가 그의 신발을 벗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출3:5).
🔹에봇(6-14절)은 다른 예복 위에 입는 조끼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두 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습니다. 흉패(15-30절)는 가슴 위에 입는 정사각형 주머니인데 여기에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보석이 달려 있습니다. 판결의 흉패라고 불리는 이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어 두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석류인지 아니면 모양은 어떠한지, 어떻게 제작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림이란 '빛들'이란 말이고, 둠밈은 '완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을 통해서 뜻을 공개적으로 백성들 앞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도구였습니다. 즉 이것들은 대제사장의 흉패 안에 넣어져 보관되다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지을 때에 제비 뽑는 형식으로 뽑아 문제를 판결 짓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할 때 물으면 우림은 빛을 발하며 응답을 해 주었는데, 오늘날 만화 영화에서 마법의 구슬에게 무엇을 물으면 답을 주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28장 - 제사장을 위한 희생물>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룩히 구분하시기 위해 그들을 위해 죄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10-14절).
🔹이것을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행동인데, 무엇인가를 위임하거나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소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며,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소를 죽였는데 이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속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예가 이것입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대속물이 대신 죽습니다. 그리고 대속물이 된 제물의 피는 뿌려졌습니다. 이는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하게 되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물은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예표합니다. 죄 헌물은 죄를 담당한 채 죽고, 피를 뿌리고, 마지막은 모조리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지옥에서 3일 동안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29장 ~ 31장
4월 12일 수요일
📖읽기: 출애굽기 29장 ~ 31장
<29장 - 제사장을 위한 희생물>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을 거룩히 구분하시기 위해 그들을 위해 죄 헌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10-14절).
🔹이것을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수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는 손을 얹는 행동인데, 무엇인가를 위임하거나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소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소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며, 전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소를 죽였는데 이는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속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예가 이것입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니라 대속물이 대신 죽습니다. 그리고 대속물이 된 제물의 피는 뿌려졌습니다. 이는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하게 되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희생물은 모조리 태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예표합니다. 죄 헌물은 죄를 담당한 채 죽고, 피를 뿌리고, 마지막은 모조리 불에 태워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지옥에서 3일 동안 계셨습니다.
<30장 - 분향 제단>
🔹성막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막의 성소 입구에 있는 놋 제단입니다. 놋 제단은 번제 헌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하나는 성소 안 지성소에 들어가는 휘장 바로 앞에 있는 금 제단인데 이는 향을 태우는 분향 제단입니다. 아론은 매일 이 분향 제단에서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했는데, 이것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계5:8).
🔹그 다음 물두멍에 관한 지시가 내려집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는 것은 성막에서는 거룩함과 정결함을 유지한 상태로 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기 위해 그분께 나아가는 성도의 삶과 마음 자세가 거룩하고 정결해야 함을 배울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죄들을 자백하고 멀리하는 일 또한 중요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요일1:9).
<31장 - 성막 장인들>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을 제조할 일꾼들을 선별하십니다. 이름이 언급되는 두 사람은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말씀하시고, 거기에 합당한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은 세상의 지혜대로 하면 됩니다. 육신의 일은 육신의 힘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과나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표적이자(12-13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입니다(16절). 그러므로 율법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신약 성도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때 제정하신 안식일의 원리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적용해야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반드시 휴식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생리학적으로 우리의 세포는 7일마다 새롭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때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6일 동안 일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6일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고 하루는 쉬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사람에게는 첫 날이 됩니다. 우리는 먼저 쉼을 얻고 그 다음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첫 날에 예배를 통해 혼의 안식을 취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 34장
📖읽기: 출애굽기 32장 ~ 34장
<32장 - 우상 숭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산 아래 즉 광야에 있던 백성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십계명 중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나올 때 주신 금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심지어 아론은 그것을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를 위해”(1절)라는 그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간을 위해 일하는 가축의 형상으로 제작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에스겔서 1장 10절과 10장 14절을 비교해보면 사탄이 루시퍼였을 때 소의 얼굴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만든 최초의 우상이 금송아지였다는 것은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에스겔 10:14 그들이 각각 네 얼굴을 가졌는데 첫째 얼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며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고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33장 - 모세의 중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하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과 동행하십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만 함께하신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4장 - 십계명 개작>
🔹모세의 중보로 인해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작하라고 명하십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의 헌법이자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은 십계명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작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를 묵상해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6절)
출애굽기 35장 ~ 37장
📖읽기: 출애굽기 35장 ~ 37장
<35장 - 자원하는 마음의 헌물>
🔹성막을 제작하기에 앞서서, 안식일 규례가 다시 한 번 소개됩니다(1-2절). 이것은 성막을 제작한다는 거룩한 목표가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를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타락한 세상은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성도는 그러한 가치관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헌물을 드리는 장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모든 헌물이 자발적으로 드려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모든 자와 영으로 자원하게 된 모든 자”(21절)를 부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발성에 기초한 섬김과 헌신을 기뻐하시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동적인 섬김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헌신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36장 - 성막 제작>
🔹이제 본격적으로 성막을 제작합니다.
🔹성막의 앙장은 네 종류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가 그룹을 수놓은 앙장이고, 그 위에 염소 털로 만든 앙장, 그 위에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앙장, 그리고 그 위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을 덮었습니다. 그룹을 수놓은 앙장은 성소 안의 천장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이것을 성경에서는 성막이라고 불렀고,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간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임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들었는데, 아마 검은색 염소 털로 만들었을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죄와 그 죗값인 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의 앙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인한 대속을 예표합니다. 네 번째 앙장은 오소리 가죽인데 밖에서 볼 때 곧바로 보이는 앙장이 이것입니다. 성소 안에서 볼 때는 그룹이 수놓인 첫 번째 앙장이 보이고, 성막 밖에서 볼 때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이 맨 겉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보입니다. 오소리 가죽은 고급 가죽이 아닙니다. 매우 거칠고 투박한 가죽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가 매력 있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음을 나타냅니다(사53:2).
<37장 - 성소 안의 기구들 제작>
🔹십계명 돌판을 담을 언약궤(1-9절), 보여 주는 빵을 놓을 상(10-16절), 그리고 성소를 밝힐 등잔대(17-24절)와 분향 제단(25-29절)이 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성막에 임재하신 이유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지시와는 다른, 하지만 더 크고 화려한 성막이 제작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곳에 임재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은 성도의 삶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의 목표는 순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 (세상적으로 볼 때) 실패할 수 있고, 반대로 불순종한 결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순종 자체가 참된 성공과 승리입니다. 그 결과가 세상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입니다(삼상15:22-23).
출애굽기 38장 ~ 40장
4월 15일 토요일
📖읽기: 출애굽기 38장 ~ 40장
<38장 - 성막 밖의 기구들 제작>
🔹지금까지 성막 안에서 사용되는 기구들을 제작했다면, 이제부터는 성막 밖에서 사용될 기구들이 제작됩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것은 번제 헌물 제단과 물두멍인데, 이것들은 성막 출입구 정면에 위치합니다. 희생물을 바치는 번제단과 몸을 씻는 물두멍이 성막 입구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번제단과 물두멍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번제단과 물두멍보다 더 탁월하고 완전하게 우리 죄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출39-40장 - 성막 완성과 봉헌>
🔹39-40장은 출애굽기의 결론으로서, 모든 작업을 마친 후 성막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락에서 특히 강조되는 주제는 순종입니다. 39장에는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에 따라(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commanded Moses)”는 표현이 8번 등장하고, 40장에는 7번 등장합니다.
🔹성막을 지을 재료들이 모두 구비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완성하고 하나님께 봉헌하는 과정도 모세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세우는 날짜와 과정까지도 세세하게 지시하십니다(40:2-8). 어떻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실행합니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순종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망각했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순종보다 성공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다 보니, 진리는 사라지고 변직과 꼼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작되었는지가 성막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기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근거는 성막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성막은 이교도 신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성막을 기쁘게 받으신 이유는 모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성공과 재물과 쾌락보다 더 큰 목표입니다.